64년 역사의 프랑스 슈즈, 세계 최대 매장이 삼청동 둥지
삼청동, 수제화ㆍ플랫슈즈 메카로 '부상'

"청담동 매장은 손님 열 분 중 일곱 분이 신발을 사간다면, 삼청동은 한 분 정도만 사 가시는 것 같아요."(김양희 삼청점 매니저)

프랑스의 세계적인 신발 브랜드가 우리나라에 세계 최대 규모로 매장을 냈다. 330㎡(약 100평)의 1층 매장이다. 한국에 들어선 것도 이례적이지만 서울 청담동, 압구정동이 아닌 삼청동에 매장을 열었다.

세계적인 발레슈즈ㆍ플랫슈즈 브랜드 '레페토(Repetto)'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모델 장윤주를 비롯해 신민아, 공효진 등 패셔니스타들이 즐겨신는 신발로도 유명세다. 여자 연예인들의 공항패션에서 단골 신발로 등장하는 브랜드다.

지난달 26일 연 레페토 삼청동 매장을 오픈 20일 정도가 지난 15일 둘러봤다. 유명한 브랜드지만 삼청동 매장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매장 매니저의 말처럼 오가는 사람은 많은 데 사가는 이는 별로 없었다. 기자가 둘러보는 1시간여 동안 오가는 손님은 평일임에도 꽤 있었지만,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손님의 면면만은 다양했다. 20대 초반의 여대생부터 50대 중반의 중년여성까지, 우리나라 젊은이는 물론이고 일본·중국인까지 오갔다. 자유롭게 신발을 신어보고 매장 이곳저곳을 촬영했다. 매니저는 사진을 잘 찍고 가라고 조명도 켜준다. 세계 최대의 브랜드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다.

"오픈 초기라서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삼청동을 걸어다니다가 들리시는 분들이예요. 사려고 맘 먹고 오시는 분들이 적다보니 이런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한번 사신 분들은 매니아가 된다고 보고 있어요. 한 번 둘러보세요."

매장을 들어오는 입구에서는 브랜드에 대한 소개글과 발레 공연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여성들의 로망인 발레는 콘셉트로 한 신발인가 했지만 실제 발레복과 토슈즈, 토시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매장 가운데에는 둥그렇게 늘어선 신발들과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발레복이 눈에 띈다. 탈의실은 무대 뒤에서 프리마돈나가 대기실로 사용할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레페토는 1947년 프랑스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로즈 레페토가 유명한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아들 롤랑 프티의 조언으로 무용화를 제작하면서 생겼다. 발레슈즈는 물론이고 플랫슈즈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신발 라인은 '지지'와 '비비', '잭슨' 등의 사람 이름이 붙어 있다. 며느리인 무용가 지지장메르를 위해 만들어낸 라인은 '지지', 1956년 브리짓바르도의 부탁에 의해 플랫슈즈 형태는 ''비비'라고 불린다. 로퍼 스타일로 세계적인 모델 케이트모스가 신어 유명해진 '잭슨'은 마이클잭슨에서 따왔다.

편안한 신발의 대명사인 '레페토'가 국내 시장에 안착하는 곳으로 삼청동을 선택한 데에는 '걷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삼청동에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수제화 브랜드와 플랫슈즈 브랜드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진정한 슈즈홀릭은 삼청동을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두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한옥에 자리잡은 수제화 전문점 '라스트에비뉴'를 비롯해 '라플로채니', '슈콤마보니', '더슈' 등이 자리잡고 있다. 특이한 점은 플랫슈즈 전문점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바바라', '아이러브플랫', '스퍼' 등이 낮은 굽의 구두를 주로 취급하는 가게다. 가격대는 10만~20만원대 수준이다. 가끔 특가 할인으로 5만원에 내놓는 구두들도 있다.

'레페토'도 한국 멋쟁이들이 플랫슈즈를 사기 위해 삼청동을 찾는 점을 간파했다는 얘기다. 주요 신발의 가격대는 30만~50만원대다. 기존의 삼청동 구두집 보다는 높은 반면 강남에 자리잡은 유명브랜드의 가격대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애매한(?) 가격대와 삼청동이 플랫슈즈의 메카가 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이 곳에 세계 최대 매장까지 꾸미게 됐다는 설명이다.

국내의 대형 브랜드들도 눈치채지 못한 구두의 숨겨진 시장(니치마켓)을 프랑스에게 들킨 기분이다. 김 매니저는 "청담동 매장은 고객들의 재구매율 90%에 달하고 있습니다. 두터운 매니층을 형성한 것처럼 플랫슈즈의 거리인 삼청동에서도 인기를 끌 것으로 확신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러다가 레페토가 한국의 매니아들에게 바치는 '코리아 라인'도 조만간 내놓지 않을까?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