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30일 미 프로야구 필라델피아와 플로리다 경기 9회 말에서 1-0으로 앞선 필라델피아가 수비를 하던 상황.플로리다의 로리 폴리노가 친 땅볼이 1루수에게 정확히 송구된 것을 확인한 필라델피아 투수 로이 할러데이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포수가 달려가 할러데이를 얼싸안았고,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메이저리그 통산 20번째 퍼펙트 게임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퍼펙트 게임은 투수가 27명의 타자를 맞아 단 하나의 안타나 볼넷도 허용하지 않고 완벽하게 틀어막는 경기다. 투수 힘만으론 어렵고 수비의 도움과 운도 따라야 한다. 135년 역사의 미 메이저리그에서도 20번만 달성됐을 뿐이다. 확률상 8000 경기당 하나꼴이라고 한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70여년간 15번만 기록됐다.

1950년 일본 프로야구 첫 퍼펙트 게임을 따낸 재일동포 투수 이팔용(후지모토 히데오)은 지금도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3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 건너가 야구 선수가 됐으나 어깨 부상으로 투수생명이 끝났다고들 했다. 하지만 피나는 재활훈련으로 몸을 만들고 슬라이더를 익힌 뒤 대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나이 32살에 일궈낸 드라마였다.

우리나라도 프로야구 출범 30년 만에 첫 퍼펙트 게임이 나왔다. 롯데 자이언츠의 베테랑 투수 이용훈이 지난 17일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2군 경기에서 9이닝 동안 단 한 명의 타자도 내보내지 않는 기록을 세웠다. 1군에선 아직 퍼펙트 게임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27명의 타자를 맞아 안타와 볼넷 없이 삼진 10개를 잡아내며 7-0 승리를 이끌었다.

2004년 41세에 미 메이저리그 최고령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랜디 존슨은 "그냥 오늘 경기를 이길 수 있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던졌다"고 했다. 큰 것을 바라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한 게 기반이 됐다는 뜻이다. 이용훈도 경기 후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힘을 빼고 던지려고 노력한 게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기록에 대한 욕심이야 없을 수 없었겠지만 몸 상태와 기량에 맞게 던지려 애쓰다 보니 큰 승리가 따라왔다는 얘기다.

어디 야구뿐일까. 뭐든 무리를 하면 탈이 생긴다. 정치가 그렇고, 주식투자골프도 마찬가지다. 과한 욕심을 억제하고 평정심을 지켜야 일이 잘 풀리는 법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