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에서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사전심사청구제도'가 지자체에 확산 · 도입된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형식적인 빈 껍데기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와 서울 25개 자치구 중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는 게 지자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민원 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국 모든 지자체엔 사전심사청구제도가 의무화돼 있다. 민원인이 대규모 경제적 비용이 수반되는 허가 · 신고 등의 민원을 정식으로 행정기관에 제출하기 전 약식서류를 통해 대상 민원의 가능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다.

원래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위원회에서 일부 실시하고 있었으나 현 정부 들어 규제 개혁을 외치면서 2008년 말 법제화돼 각 지자체에 도입됐다.

하지만 도입 후 3년이 지났지만 사전심사청구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지자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인 · 허가 사업 중 정식 사전심사청구제도를 거친 경우는 지난 3년 동안 단 한 건도 없다.

서울시 민원행정 관계자는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 기업 등 민원인과 비공식적인 협의는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고 항변했다. 비공식 협의가 활성화되고 효과가 있다면 이 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민원인들의 반응도 그렇다. 중소기업인 L씨는 "인 · 허가 여부에 대해 지자체 등과 이런저런 형식으로 비공식적인 협의를 하는 건 맞다"며 "그러나 비공식 협의는 신뢰도가 낮을 뿐 아니라 책임도 없고 원론적 수준의 답변에 그쳐 (답변을 들어봤자)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서울시의 25개 자치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18일 기자가 강남지역의 한 구청에 사전심사청구제도 활용률을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마다 "(그런 제도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고 수차례 다른 부서로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받은 K구 민원행정 담당자는 "그런 제도가 있나"라고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사전심사청구제도의 존재조차 모르는 게 일선 민원창구의 현실이다.

중랑구와 서대문구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구로구는 지난 15일 "기존 사전심사청구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 사전심사청구제도 대상 민원을 재지정하는 등 제도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한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구로구 관계자는 "우리 구에서도 2009년 초 해당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서울의 다른 자치구도 실적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민원제도과 관계자도 "각 지자체에 사전심사청구제도와 관련해 매년 민원서비스 관련 지침을 내리긴 하지만 서울에서 제대로 시행되는 곳은 거의 없다"고 인정했다. 그는 "민원인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인터넷을 통해 각종 인 · 허가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사전심사청구제도를 도입해 활용률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전심사청구제도

민원인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따르는 허가 · 신고 등의 업무에서 정식으로 행정기관에 민원을 내기 전 약식서류를 통해 대상 민원의 가능 여부를 서면으로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2008년 말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의무 적용됐다. 청구 대상은 해당 지자체가 자율로 정할 수 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