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추석이 월요일에 들면서 연휴가 짧았다. 고향이 먼 데인 분들은 오가는 길이 좀 분주했겠다. 하지만 나처럼 어디 안 가고 추석 연휴를 꼬박 집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나흘 연휴가 어디인가. 오랜만에 여유롭게 게으름을 부렸다. 하지만 게으름이 지나쳤을까. 마지막날이 되니 몸이 찌뿌듯한 게 영 무거웠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첫날만 움직였을 뿐 계속 먹거나 자거나 수다를 떤 게 전부이니 몸이 뒤틀릴 만도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연휴 마지막날 저녁에 좀 걸었다. 도통 움직이지 않다가 오랜만에 걸어서 그런지 금세 숨이 가쁘고 다리가 뻐근했다.

하지만 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주변의 나무 냄새도 향긋하게 느껴지는 것이 썩 괜찮았다. 몸을 움직이니 배도 좀 꺼지는 것 같고 몸도 한결 가볍고.더구나 덤으로 기분까지 좋아졌는데 뭔가 큰일이라도 해낸 듯 마음이 뿌듯해졌다. 집에 들어와 찬물에 땀을 씻으니 몸은 개운하고 정신은 맑고,한 시간 투자로 얻은 게 많은 밤이었다.

퇴근 후 집 주변을 걷자고 생각한 건 오래 전이지만 실행한 건 몇 번에 그쳤다. 운동화 신고 현관 문만 열고 나가면 되는데 이게 왜 이리 어려운지.한마디로 의지박약인데,이날도 나가기 전까지 마음 속에선 한바탕 씨름이 벌어졌다. 나가자,아니 오늘은 말고 다음부터 하자….

다행히 이날은 의지가 승리를 거둬 실행에 나섰지만 만약 그냥 주저앉았다면 마음 속엔 스트레스가 쌓였을 거다.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넘어가는 것에 대한 찜찜함,그런 자기 자신을 마땅치 않아 하는 마음 등등 말이다. 실제로 얼마 전 읽은 책 《화 내지 않는 연습》에 따르면,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을 때 많은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껏 '운동해야지' 하는 건 마음뿐 실행을 다음으로 미룰 때마다,관대하고 개방된 사람이 되자고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영 다르게 행동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바깥 환경이나 외부 변수가 주는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몸과 마음이 머리의 지시대로 따르지 않을 때,즉 머리와 마음이 따로일 때도 많이 쌓이는 법이니 결국은 나 자신이야말로 가장 큰 스트레스 제공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 같다. 생각한 대로 행할 것인가,아예 생각을 접고 끊을 것인가. 한데 나는 그것이 비록 망상일지라도 생각하는 게 좋다. 지금의 일을 28년 동안이나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일이 생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분명하다. 액션! 행동하는 것 말이다. 한데 말이 쉽지,여전히 나는 의지박약에 실천력 부족이니 스트레스를 이기는 길도 결국은 나 자신과의 싸움인 셈이다. 그냥 행하면 될 일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신문 지면에 드러내는 건 이렇게 해서라도 실천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지켜볼 일이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최인아 < 제일기획 부사장 namoo.choi@sams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