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정규직 대책, 노동유연성 보완을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사 그리고 정치권이 소속집단의 구미에 맞는 입법을 요구하며 투쟁하거나 정부를 압박하는 모습도,이에 따라 새로운 비정규직법이 제시되는 것도 그렇다. 역대 정부마다 다양한 비정규직 대책을 쏟아냈지만 그 효과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비정규직 대책의 역사를 보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비정규직 문제는 기본적으로 십인십색의 처방전이 난무해서 어느 것이 명의의 처방인지 좀처럼 식별이 어렵다는 점이다. 노사 그리고 정치권 모두 나의 처방전이 옳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대로 했다가는 아마도 노동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이 실로 막급할 것이라 판단된다. 둘째 비정규직 문제를 기본적으로 법으로 해결하는 데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법으로 규제해도 법을 우회하는 편법적 수단이 금세 마련돼 법의 규제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포괄적인 정책방안 마련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지난 추석 연휴 전야에 또 다시 비정규직 대책이 발표됐다. 이번 대책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답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정치권의 거센 압력에 정부가 상당한 부담을 갖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노 · 사 · 정 간 타협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고 정치권은 포퓰리즘적 방안만 검증없이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부득이한 조치라고 판단된다.

30개에 이르는 구체적인 정책 메뉴를 보면 일부는 전문가들이 비정규직 대책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제안했던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들로,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예컨대 정치권이 요구한 것으로,대규모 민간기업에 비정규직 형태별로 고용인원을 의무적으로 공시토록 하는 것은 대다수 국가에서 시행하지 않는 제도로 이를 공기업에 한정해 공시하도록 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률제정을 통해 원청 사용자로서의 책임성을 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원청기업과 하도급 기업이 근본적으로 별개의 기업임을 무시한 주장이다. 이는 다른 기업 경영자의 책임성까지 법적으로 떠안게 한다는 것으로 추후 벌어질 고용파괴 등 노동시장 후유증을 유발할 것이 자명하다.

그나마 원청 기업과 하도급 기업 간에 공유가치를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자발적인 협치모델을 형성해 가되 가이드라인과 최소한의 규제를 도입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판단된다.

지금의 대책은 정치권이 요구하는 비정규직 보호대책의 장만을 담고 있다. 즉 1장 비정규직 보호대책에 이어서 2장 고용유연화를 통한 건강한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의 종합적인 비정규직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2장의 고용유연화 없이 1장의 보호정책만 제시될 경우 정부대책 비용이 기업에 전가돼 전반적인 고용감소 혹은 중소기업에 편법과 불법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1장과 2장이 균형 잡히게 제시될 경우 더 '큰 유연성과 더 큰 안정성'이란 비정규직 대책의 효과를 볼 수 있다. 2장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노사 당사자가 합의할 경우 2년 이상으로 연장하게 하거나,파견업종에 제조업 포함 등 업종확대 대책을 포함할 수 있다.

또한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기업에 노동법의 예외(labor law exemption)를 두어 원청 경영자에 대한 법원의 근로자성 · 사용자성 시비로부터 자유롭게 해 고용안정이 확대되는 중간고용형태를 마련해 갈 수 있다. 물론 2장의 유연성은 정치권에서 반대할 것이 자명하므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보호방안이 마련된 상태에서 또 다른 보호는 노동시장 경직성을 초래할 뿐이다.

노동시장 열위자들인 청년이나 여성의 고용창출을 위해선 고용 유연성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대책에 절반의 과제인 유연성 문제가 후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조준모 <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