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해봤자 이득(incentive)될 게 없다. "

그리스 의사인 알렉시스는 자신이 탈세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집에 수영장이 있지만 수영장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세무당국에 이를 물탱크라고 신고했다. 고급 스포츠카 명의도 소득이 없는 다른 가족 앞으로 돌려놨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그리스 정부가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 하지만 알렉시스 같은 부유층들은 탈세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탈세를 동반한 막대한 규모의 '지하경제'가 재정위기국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뇌물 관행,높은 세율이 지하경제 키워

텔레그래프가 지하경제 연구 권위자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오스트리아 린츠대 교수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재 그리스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4.3%로 나타났다. 지난해 그리스 GDP가 3103억달러이므로 지하경제 규모는 754억달러로 추정된다. 또 다른 재정위기국인 이탈리아의 지하경제는 GDP 대비 21.2%였다. 지난해 이탈리아 GDP가 2조181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지하경제 규모는 4623억달러 정도다.

유럽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에스토니아로 GDP 대비 28.6%였다. 키프로스(26.0%) 몰타(25.8%)가 뒤를 이었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4,5위였다.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몰타는 GDP가 300억달러가 안 되는 소국(小國)이다.

슈나이더 교수는 "그리스 경제의 4분의 1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이유는 뇌물 관행과 관계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에서 아이가 무릎이 깨져 병원에 찾아가면 의사는 200유로를 뇌물로 요구한다"며 "환자 부모는 뇌물을 건네며 '이런 가욋돈을 내야 하는데 세금이 무슨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독일(13.7%)과 영국(11.0%)은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 비해 지하경제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미국(7.0%) 일본(9.0%) 등에 비해서는 대체적으로 지하경제 규모가 컸다. 유럽 국가들의 세율이 미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게 지하경제를 키운 원인으로 분석된다.

◆세금 더 걷기 안간힘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은 세수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탈세자를 기생충으로 묘사한 광고 캠페인을 만들었다. 지하경제 규모를 줄여 더 많은 세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의회는 지난 14일 540억유로 규모 재정긴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스 정부도 재정 확충을 위해 모든 부동산에 2년간 특별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상위 0.3% 부자들에 대한 증세를 골자로 한 '버핏세(Buffet rule)' 도입을 19일 제안했다. 재정적자 감축규모의 절반인 1조5000억달러를 세수증대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것. 하지만 공화당은 증세가 투자를 위축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부자에 대한 증세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이뤄지는 금융거래에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토빈세'에 대한 논쟁도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은 토빈세가 금융시장 왜곡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영국 등은 이 제도가 금융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쾰른시가 거리의 여인들에게 매달 21만원의 세금을 걷는 등 이른바 '섹스세'를 도입하는 도시와 지방정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 지하경제

shadow economy.세금을 내지 않고 정부 규제를 피해 이뤄지는 모든 경제행위를 말한다. 뇌물 수수,매춘,마약거래,횡령 등 '불법적 지하경제'와 정상적 경제행위지만 탈세 목적으로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합법적 지하경제'가 있다. '검은 경제(black economy)'라고도 불린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