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구 · 개발(R&D) 예산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다. R&D 예산을 따낸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 등이 지난 5년간 수백억원의 사업비를 횡령 또는 유용한 것으로 국정감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R&D 사업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횡령 · 유용한 사업비의 최대 5배를 부과금으로 물리는 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지경부가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 3곳이 관리하는 163건의 과제에서 2006년부터 지난 6월까지 총 279억4800만원의 사업비를 횡령하거나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기관은 정부의 R&D 과제를 전담해 관리 · 평가하는 지경부 산하 기관들이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관리하는 연구과제에서 163억3100만원,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연구과제에서 93억1100만원,한국산업기술진흥원 연구과제에서 23억600만원의 사업비를 횡령하거나 유용했다.

연구에 필요한 물품을 사지 않거나 연구비를 부풀려 타낸 경우가 34건으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났다. 연구비를 무단으로 인출한 사례는 29건,재료나 부품을 연구 목적 외에 쓴 사례가 10건이었다.

예컨대 한양대학교는 30억원 규모의 '부품소재 신뢰성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하면서 6억3000여만원어치의 재료와 부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또 이노비전과 유니드일렉트로는 신기술의 피코프로젝터를 공동 개발하면서 지원받은 사업비 31억5000만원 중 8억8000여만원을 무단으로 인출해 환수조치 당했다.

고급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지경부의 국제기술인력양성사업이 '공무원 유학'으로 변질하고 있는 것도 R&D 예산 낭비 사례로 지적됐다. 박 의원이 감사원 감사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기술인력양성사업의 기술 기반 분야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해외 유학을 다녀온 25명 중 17명이 지경부 또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25명 중 16명은 기술 분야가 아니라 법학이나 경영전문대학원(MBA) 등을 전공했다.

일부는 수강신청을 취소해 등록금을 환불받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불법도 저질렀다. R&D 예산을 들여 얻은 기술을 이용하는 자가 부담하는 대가인 기술료로 운영하는 이 사업에는 최근 5년간 60억원을 투입했다.

지경부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횡령 · 유용한 사업비의 최대 5배를 제재부담금으로 물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개정된 산업기술혁신촉진법 시행령을 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R&D 과제에 대해 불시 점검을 하는 등 관리 ·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올해 말을 목표로 시행령을 개정해 제재부담금 부과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