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의 지난 3월 말 현재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잔액 1조4279억원 가운데 8152억원이 부실화한 것으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자료에서 드러났다. 3개월 이상 이자를 못 받은 부실채권(고정이하 여신) 비율이 무려 57%에 달한다는 얘기다. 불확실성이 큰 신흥국 부동산에 마구잡이로 빌려준 결과다. 저축은행의 해외PF 대출 부실비율이 62%인 점을 감안할 때 은행이 별로 나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 은행들이 해외진출 과정에서 어느 정도 손실이 나는 것은 불가피한 수업료로 볼 수도 있다. 자산이 300조원대에 달하는 은행들의 초국적지수가 평균 2.7%에 불과하니 비좁은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해외 진출 수업료라고 하더라도 눈 감고 빌려준 게 아니고서야 대출금의 절반 이상을 떼일 판이란 사실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채권 비율이 4.2%에 불과한 것과도 너무 대조적이다.

은행들이 해외에만 나가면 깨지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제각기 리딩뱅크라고 간판을 내건 은행들이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파산스와프(CDS) 키코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조(兆)단위 손실을 봤고,해외 은행 인수 · 합병(M&A)에서는 잠재부실도 파악하지 않은 채 인수했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손실을 메워온 게 현실이다. 어린아이도 물건을 살 때면 따져보고 비교한 뒤 결정하는데 은행들은 뭘 사는지도 모르고 덥석 물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자초했다. 이것이 은행의 실력이고,해외PF 부실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은행들은 128개 해외점포에서 3억7000만달러를 벌었지만 해외PF 손실을 감안하면 돈 번 게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상반기 9조9000억원의 순익도 80~90%가 국내 이자장사로 벌어들인 것이다. 은행의 사상 최대 순익은 국민의 금융고통이 그만큼 커졌다는 말과 같다. 국내 은행들의 실적은 결코 실력의 동의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