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유럽의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지난 9일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회의가 열렸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독일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악셀 베버 총재가 지난 4월 사임한 이유는 중(重)채무국가의 장기국채 매입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ECB의 국채매입은 계속되고 있다.

유럽은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돈을 쏟아부으며 단기해결책에 치중하고 있다. 재정적자를 짊어질 의사가 없는 납세자들에게 비용을 전가시키며 은행 살리기에 급급하다. ECB는 돈만 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유로화 출범 당시 독일과 프랑스는 ECB의 체제는 분데스방크를 따르되 수장은 프랑스 또는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맡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유로화에 가입하기로 한 국가들은 유로화 안정을 위한 규정,이를테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로 제한하는 것에 합의했었다. 하지만 현 위기로 이런 합의는 자주 깨졌고 구제금융과 장기국채 매입 조치로 유로화는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스에 추가적인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한 긴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 노동자의 평균노동생산성과 평균실질임금 간 격차가 15~20%로 너무 많이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든가 실질임금 수준을 낮춰야 한다.

현재 그리스가 국가 주도로 이 차이를 줄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잔류하면서 향후 6~10년 동안 임금과 물가를 매년 2~3%씩 낮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로화를 평가절하하는 방안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소득세율 증가 등 증세로 그리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량 정리해고가 잇따를 국유재산 매각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있다면 IMF의 구제금융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구제금융이 이뤄지면 IMF 쿼터(통화기금할당)가 높은 미국과 영국,일본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들 국가도 각각 심각한 국내 문제에 직면해 있다.

ECB는 유로화의 평가절하를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이 유로존에 있으면서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릴 방법은 있다. 재정이 건전한 북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단일통화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통화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 유로화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평가절하로 인해 중(重)채무국가들도 가격경쟁력을 회복할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영구적인 해법은 서로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시장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놔둬야 한다.

앨런 멜처 < 美카네기멜론대 교수 >

◆이 글은 앨런 멜처 카네기멜론대 교수 겸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이 'PIGS를 유로존에 남게 하라(Leave the Euro to the PIGS)'란 제목으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