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사장, '禁女의 보험 CEO' 유리천장 깬 슈퍼우먼
지난 4월 미국 푸르덴셜생명의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얀 반덴버그 사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5개월 동안 진행해온 한국 푸르덴셜생명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선임 작업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손병옥 부사장.하지만 본사 이사회에 추천할 최종 후보자 결정을 앞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논쟁이 벌어졌다. 이유는 후보자의 성별(gender) 문제였다.

한국 금융계의 보수적인 문화를 감안할 때 여성 CEO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규제를 많이 받는 보험사의 경우 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한데,남성 관료들을 상대하는 데는 남성 CEO가 적합하다는 주장이었다.

반덴버그 사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후보자를 다시 물색하고,금융당국에도 의견을 구해 봤다. 그 결과 손 부사장이 한국 푸르덴셜생명을 이끄는 데 최적의 후보임을 재확인했다. 회사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지난 15년 동안 손 부사장이 보여준 업무 능력과 리더십이 차기 CEO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내 금융사 최초의 여성 CEO는 이런 산고를 겪고 탄생했다.

◆"유리천장은 없다"

가장 보수적인 업종으로 꼽히는 보험사에서 여성인 손 사장이 CEO까지 올라선 비결은 무엇일까.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섬세해요. 일 처리가 꼼꼼한 데다 업무를 할 때도 남성보다 계획적으로 하는 편이지요. 본능적으로 모성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을 더 포근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능력을 발휘하며 믿음을 준다면 유리천장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남성 중심의 조직일수록 여성들의 충성도가 의심을 받는 게 현실이지만,그럴수록 불평보다는 업무를 통해 상사에게 신뢰 받는 것이 여성 직장인들이 사는 길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손 사장은 결혼한 여성 후배들에게 "가정에 소홀하지 말라"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일생을 두고 일에 치중해야 할 때와 가정에 충실해야 할 때를 구별하고 매순간의 역할에 충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다거나 고등학교 3학년일 경우에는 직장보다는 가정에 좀더 비중을 두고 자녀들에게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시기에는 회사일에 좀더 투자하면 얼마든지 가정과 일의 균형을 이룰 수 있어요. "

◆짧은 순간에도 큰 감동

푸르덴셜생명은 보험업계에서 채용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설계사는 반드시 신입사원으로 선발한다. 대부분의 보험사가 영업 실적이 좋은 경력 설계사를 뽑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손 사장은 신입 사원 채용이 결정되면 그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 해당 팀원들도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반드시 마련한다. 그 자리에서 회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신입 사원에게 회사가 본인의 적성에 맞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여러 잣대들을 제시해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업무에 뛰어든 직원들은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그만큼 타사로의 이직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손 사장은 1996년 푸르덴셜생명 인사부장으로 영입된 뒤 1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의 진가는 인사 분야에서 발휘됐다. 인사 담당 임원 시절 그는 직접 신입사원 및 경력사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임원들을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말단 사원의 가정사까지 파악했다. 주말에도 밤을 새워가며 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그는 생보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세 남자와의 특별한 인연

[CEO & 매니지먼트]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사장, '禁女의 보험 CEO' 유리천장 깬 슈퍼우먼
손 사장은 일생에서 세 명의 남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그는 진학과 진로를 결정하는 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서울 법대에 들어가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갈 만한 성적도 됐고요. 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여대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딸들은 물론 며느리도 여대 출신으로 맞고 싶어했어요. 결국 그 꿈을 이루셨죠.언니와 여동생 올케뿐 아니라 제 첫딸도 여대를 졸업했으니까요. "

손 사장은 졸업을 앞두고 일본항공(JAL)에 지원서를 냈다.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접어야 했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외국계 금융회사인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이었다. 결국 국내 첫 여성 금융사 CEO에 오르게 된 첫발도 아버지의 권유였던 셈이다.

그곳에서 손 사장은 직장생활의 멘토인 제임스 최 스팩만 전 푸르덴셜생명 사장을 만났다. 당시 상사였던 스팩만 전 사장은 손 사장이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1996년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산 중년 여성이 다시일할 자리를 얻었다는 것을 행운이라고 여겼다. 직급이나 연봉에 대한 얘기는 없었지만,자신을 인정해준 데 대해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간직하게 됐다.

또 한 사람 빼놓을 수 없는 남자는 남편인 고 이석영 전 중소기업청장이다. 맞선을 본 지 2주 만에 약혼했다. 처음 보자마자 믿음이 갔고,평생 그런 사람 못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미들랜드은행 HSBC은행 등 외국계 은행을 거치며 경력을 쌓아가던 손 사장은 1993년 2월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로 돌아갔다. 미국 워싱턴 상무관으로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전 청장이 고위직이 될수록 내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손 사장을 외조했다.

그가 푸르덴셜생명에서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2002년 초.이 전 청장은 암에 걸렸다. 의사는 2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남편이 투병한 지 2년 째 손 사장은 병 간호를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제가 집에 있으면 더 부담이 된다며 말렸습니다. 제가 가고 있는 길을 계속 갔으면 좋겠다고 격려해주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은 절대 암에 굴복하지 않는다며 저를 위로했어요. 남편은 의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3년6개월을 더 살았습니다. 투병하는 5년6개월 동안 매일 양재천을 함께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돌이켜보면 그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

◆사회적 책임에도 각별한 관심

손 사장은 푸르덴셜 사회공헌재단의 창립 멤버다. 현재는 이사를 맡고 있다. 푸르덴셜생명은 매년 10월 첫째주 헌혈 도배봉사 목욕봉사 등을 진행하는 '글로벌 발런티어데이'를 연다.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저소득층 자녀 및 맞벌이 가정의 청소년을 위한 경제교실,조혈모세포(골수) 기증 운동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2005년 여성들의 경력 개발과 직장생활 적응을 위한 멘토링 활동을 벌이는 WIN(Women In Innovation)을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그 공로로 지난해 7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첫 여성 CEO라는 타이틀에 기뻐하기보다는 저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여성 후배들을 생각하면 아직 어깨가 무겁습니다. "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