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정부의 실패다. 시장 실패를 교정하고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정부가 잇달아 참담한 실패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전력대란이 그렇고 정부가 부채를 눈덩이처럼 늘려가는 것이 그렇다. 전력 시장에 무한정 개입해온 정부는 기어이 수급구조를 붕괴시킨 끝에 나라경제를 블랙아웃으로 몰아갈 정도로 대파국을 만들어냈다. 전력 문제는 약과다. 온갖 명목의 시장개입은 국공영 기업이나 사회보장 제도로 전가되는 숨겨진 거대한 국가부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문제를 은폐할 뿐더러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이런 정부 과잉 현상이 우리가 직면한 가장 본질적이고 심각한 경제 문제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이탈리아로 옮겨가는 정부의 실패는 진정될 가망조차 없는 상황이다. 어디서든 정부의 실패에는 당연히 정치 과잉이 도사리고 있다. 오도된 정치가 정부의 무절제를 만들어내고 국민의 삶을 저당 잡히고 있다.

1. 전력대란 경고했던 이승훈 교수의 한경시론

[사설] 도처에 정부의 실패다
지난 7월30일자 한경시론에 기고한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분명한 단어로 "전력대란은 시간문제"라고 썼다. 물가 안정 목표에만 집착한 정부가 원가회수율의 90%에도 못 미치는 낮은 전기요금제를 지속하면서 부당한 시장구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었다. 또 이런 잘못된 가격구조가 전력 과소비를 초래하고 있고 그 결과 전력대란은 시간문제라는 날카로운 경고였다. 이 교수가 경고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15일 미증유의 전력대란이 터지고 말았다.

이번 전력대란은 관리 능력의 실패 등 미시적인 문제도 물론 간과할 수는 없다. 국민들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있도록 하는 경고 시스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요인은 이 교수의 지적대로 전력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수급 원리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던 점이다. 실제로 명목 전기요금은 30년 전에 비해서도 2배밖에 되지 않는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30년 전보다 훨씬 싸진 것이 전기요금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전력피난처(electricity haven)로 한국을 주목하고 전기가 많이 들어가는 IT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세우려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정도다. 당연히 1인당 전력 소비는 30년 전에 비해 10배나 늘어났다.

설비 투자는 수요를 따르지 못했다. 발전 자회사들이 한전의 적자 부담을 나누어 지면서 새로운 설비 투자를 감행할 여력은 바닥났다. 그나마 원자력 발전이 무너진 가격 체계를 메우는 데 한몫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은 막무가내식으로 원전건설을 방해하고 있다. 결국 수요는 늘어나고 공급 여력이 줄어들면서 사단은 일어나고 말았다. 공짜는 없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 개입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이번 전력대란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2. 청년세대에 지옥 물려주는 눈덩이 국가부채

광의의 국가부채가 작년 말 1848조원으로 7년 새 두 배로 급증했다고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어제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여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 경연장이 돼버린 정치권에서 나온 모처럼 올바른 지적이다. 이 의원이 꼽은 1848조원은 국가직접채무 393조원을 비롯해 공기업 · 준정부기관 부채 376조원,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부족액 861조원,통화안정증권 잔액 163조원 등을 합친 것이다. 한결같이 구멍이 나면 결국 혈세로 메워야 하는데 쉬쉬해온 것들이다.

[사설] 도처에 정부의 실패다
더 큰 문제는 나랏빚이 줄기는커녕 증가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평균 국가부채 증가율이 노무현 정부 시절 7.9%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던 이명박 정부 들어선 11.2%로 높아졌다. 금액으론 4년 새 503조원이나 늘었다. 게다가 4대강,보금자리주택 등 정부사업을 공식 국가부채에 안 잡히는 수자원공사 LH 등 공기업에 전가해 돌려막는 그런 정부다. 그러고도 여당부터 앞장서 성장은 포기하고 복지를 늘리자고 아우성이니 앞으로 벌어질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어느 누구도 나랏빚을 줄일 생각은 않고 내 임기만은 피하고 보자는 님트(NIMT · Not in My Term) 증후군이 만연해 있다. 정부 관료들은 재정건전성 얘기만 나오면 "아직은 괜찮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지만,이는 외환위기 직전 펀더멘털은 괜찮다던 말과 다를 바 없다. 눈덩이 나랏빚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부담이 된다. 다음 세대에 대한 착취를 고착화시키는 정부의 실패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무상 복지 시리즈나 보편적 복지 타령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3. 이탈리아 다음은 누구? 해픈 국가들의 종말

결국 유럽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 국가신용등급도 떨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9일 이탈리아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단기 국가신용등급은 'A-1+'에서 'A-1'로 각각 낮췄다. 앞서 무디스도 이탈리아의 막대한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로써 소위 PIGS로 불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이 모두 떨어졌다.

남유럽 국가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된 것은 설명이 필요없는 정부 실패의 결과다. 1999년 유로존 출범으로 자신의 실력에 걸맞지 않은 강세 통화를 쓰게 된 이들은 국가 부채를 싼 값에 조달할 수 있게 되자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한 채 국가 빚을 내고 이 돈으로 선심성 복지정책에 펑펑 돈을 써왔다. 국가부채가 쌓여간 건 당연하다. 그 와중에 2008년 글로벌 위기가 터지자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더 늘렸고 이제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대체로 국민소득(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80~100%를 넘으면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는데 그리스는 이 비율이 152%, 이탈리아는 120%에 달한다.

문제는 남유럽 위기가 유럽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체를 뒤흔든다는 데 있다. 더욱이 그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몇몇 국가 정부의 실패가 이제는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실패 뒤엔 이런 정부를 선택해온 대중민주주의의 함정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