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씨티그룹은 고민에 빠졌다. 2007년 10월 이후 주가 폭락으로 팔콘 등 수익률이 80% 이상 떨어진 헤지펀드들이 속출해서만은 아니었다. 고객들에 대한 보상 여부가 문제였다.

씨티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최고경영자(CEO) 비크람 팬디트는 보상에 반대했다. "헤지펀드는 원래 위험성이 높고 법적으로 보상의무도 없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씨티그룹의 글로벌 자산운용부문 책임자였던 샐리 크로첵은 반발했다. "손실폭이 너무 크고 일부 헤지펀드는 고객들에게 리스크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2년 포천이 선정하는 '가장 정직한 애널리스트(The Last Honest Analyst)'에 뽑혔던 크로첵으로서는 당연했다. 그러나 팬디트와 맞선 그는 결국 그해 8월 말 해고됐다.

크로첵은 다시 일어섰다. 1년 뒤 메릴린치를 인수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그를 자산운용부문 CEO로 영입했다.

그는 뛰어난 실적을 올리며 월가 최대은행의 CEO감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월가의 마지막 여성(The Last Women Standing on Wall Street)'이라는 제목으로 크로첵의 해고소식을 전했다.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여성'이라는 게 보이지 않는 해고의 사유라는 게 월가의 분석이다.

그래서 월가의 대부분 전문가들은 언젠가 그가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의 벽)'을 뚫고 화려하게 컴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월가의 '신데렐라'에서 '여제'로

학창시절 크로첵은 볼품없는 외모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됐다. 치아교정기와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얼굴에는 주근깨도 많았다. 이런 그를 어머니는 "습관적인 비관론자(naysayer)의 말에 귀기울이지 말라"며 다독였다. 이 말은 그가 여성으로서는 고위직에 오르기 힘든 월가라는 정글을 거침없이 돌파해 나가는 데 지침이 됐다.

크로첵은 1987년 주식시장이 대폭락한 '블랙 먼데이'가 촉발되기 두 달 전 미국 증권사 샐러먼브러더스의 애널리스트로 월가에 발을 들여놨다. 그는 타고난 금융가였다. 미국 경제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좌충우돌했을 법한 월가 초년병 시절이 "오히려 중학생 시절보다 덜 힘들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1994년 미국 중소 규모 리서치회사인 샌포드번스타인으로 자리를 옮긴 지 7년 만에 CEO에 올랐다. 2002년에는 38살의 젊은 나이에 씨티그룹 계열 증권사인 스미스바니 CEO로,2004년엔 씨티그룹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임명됐다. 그를 따라다녔던 '신데렐라'라는 꼬리표가 '월가의 여제'라는 별칭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크로첵은 주말마다 방대한 자료들을 집으로 가져가 집요하게 파헤치고 분석했다. 월가 최대은행인 씨티그룹의 재무자료를 머리에 담고 어떤 질문도 자료를 보지 않고 답하는 역량을 과시했다. 이런 열정 덕분에 2002~2009년 8년 연속 포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에 선정됐다. 2002년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영향력 있는 글로벌 사업가'로도 꼽혔다. 2006년에는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서 6위에 랭크됐다.

◆정직과 야심,'양날의 칼'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정직이었다. 유대인 사업가인 아버지와 개신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첵은 탐욕으로 얼룩진 월가에서 정직으로 승부했다. 2002년 포천의 가장 정직한 애널리스트'에 선정된 데 힘입어 스미스바니 CEO에 발탁됐다.

당시 월가는 이른바 '고객 기만'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대형 투자은행들이 각종 계약을 따낼 목적으로 투자자들을 오도할 수 있는 리서치 자료를 내 물의를 일으켰다.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소환된 샌디 웨일 씨티그룹 회장은 크로첵을 영입했다. 회사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크로첵의 정직한 이미지를 산 것이다. 하지만 타협을 모르고 융통성 없는 것으로 비쳐진 크로첵의 성품은 이후 고객보상을 둘러싸고 최고 경영자와 충돌해 퇴출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크로첵은 야심을 드러내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올해 4월 WSJ와의 인터뷰에서 남성 중심의 월가에서 성공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남성들에게 주로 맡겨지는 힘들고 중요한 과제를 먼저 해결하겠다고 손들고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로첵의 트레이드마크인 정직,야망,도전은 인생에서 '양날의 칼'이었다.

그는 올 상반기 BOA 글로벌 자산운용부문의 순이익이 10억4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35% 급증하는 성과를 내고도 해고됐다. 같은 기간 BOA가 68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높은 실적이다. 포브스는 그가 해고된 배경에 대해 "크로첵은 솔직하게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고,그것이 브라이언 모이니한 BOA CEO에게 위협이 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BOA 직원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크로첵은 실적과 기업문화 개선,고객관리에 있어 탁월한 수완을 보여줬다"며 "이번 결정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컴백' 기대하는 월가

지난 9월6일 갑작스런 크로첵 해고소식에 월가는 놀라워했다. 그가 2008년 씨티에서 물러났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재연됐기 때문이다. '파워 게임'에서 밀려 전격적으로 물러난 것도,최고의 자리(씨티 및 BOA CEO)를 마지막 한 계단 남겨두고 고배를 마신 것도 그때와 비슷했다. 하루종일 '월가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의 거취와 관련한 전화와 문자메시지,이메일이 쇄도했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그의 해고 소식은 월가의 유리천장 논란에 불을 지폈다. WSJ는 "월가 고위직 분야에서 여성의 위상 진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painfully slow)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미국 리서치회사 캐탈리스트에 따르면 미국 금융권 고위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 미만이다. 금융업 종사자의 50% 이상이 여성임을 감안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미국 대형은행 가운데 여성 CEO가 이끄는 은행은 키코프 단 한 곳뿐이다.

월가는 '여제' 크로첵이 다시 한번 '오뚝이'처럼 일어서 유리천장에 도전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WSJ는 "크로첵에게 금융업은 여전히 '드림 잡(dream job)'이므로 여기가 종착역이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