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야행성이다. 유럽계 이민,그 중에서도 이탈리아계와 스페인계가 주류다. 라틴 특유의 낙천적이고 다혈질의 기분파로 일하는 낮 시간보다는 노는 밤 시간을 중시한다. 일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은 절대 없지만,놀고 마시면서 밤을 새우는 데는 '선수'다.

평일에 레스토랑이 오후 8시에 문을 열지만,실제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은 9시30분이 지나서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는 연령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밤을 새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서 파티를 열거나 밤 늦게까지 삼삼오오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식사를 한다. 젊은 층은 2차로 새벽에 문을 여는 춤추는 장소로 이동해 밤을 새운다.

금요일 밤부터는 아무리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노래하거나 폭죽을 터뜨려도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현지 분위기를 잘 모를 때는 몇 번 이웃에게 이야기도 해 봤지만,전혀 먹히지가 않는다. 도리어 화를 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젊은이들의 춤추는 장소를 '무도장'이라는 뜻의 '볼리체(Boliche)'라고 부른다. 볼리체는 보통 현란한 사이키 조명시설을 갖춘 대규모 디스코텍 같은 장소다. 최소 수백명에서 수천명 이상이 들어가는 대형 춤장이다. 볼리체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63개,수도권인 그란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54개로 100개가 넘는다. 중소형 및 등록되지 않은 볼리체까지 합하면 수백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에도 많이 산재돼 있어 공식 통계조차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밤 늦은 시간에 볼리체에 들어가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볼리체는 통상 밤 12시나 새벽 2시 사이에 연다. 늦게 시작하다보니 젊은이들은 1차로 바에 모여 식사하거나 음주한 뒤 볼리체로 들어가 밤을 새워 춤추고 술을 마신다. 볼리체가 문을 닫는 아침 7시 정도에 빠져 나온다.

대형 시설이면서 젊은 사람들이 주말에 집중해 모이다 보니 볼리체에서 여러 종류의 사건 · 사고가 일어난다. 현지 TV에서도 매일 볼리체 주변에서의 폭력이나 마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보도한다. 의회에서는 볼리체 개장시간을 앞당기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문제,음주 판매시간 제한 문제의 입법화를 추진하지만 매번 볼리체 업계의 반대 때문에 흐지부지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야행성 때문에 요식업이나 유통업을 비롯한 많은 산업이 이에 맞춘 마케팅을 하고 있다. 영업시간을 새벽까지 연장하거나 아예 24시간 영업을 하는 마트,배달전문점,시내버스 등이 생겨났다. 밤을 새우며 노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제과점이나 피자집,식당 등이 아침식사를 신규 메뉴로 내놓고 영업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는 먼 거리만큼이나 우리와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단순히 밤새 노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이들은 내일보다 오늘 · 현재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나이를 막론하고 지금 잘 노는 것,현재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행복지수도 우리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훈 KOTRA 부에노스아이레스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