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지난 20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깜짝 방문한 '사건'이 21일에도 재계에 회자되고 있다.

정 회장의 방문은 지난 4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포스코를 찾은 데 대한 답방 차원이지만,업종과 기업문화가 전혀 다른 두 그룹 최고위 경영진이 세 시간 넘게 만찬을 가졌다는 점에서다. 이 자리엔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과연 두 그룹 경영진의 만찬에선 어떤 얘기가 오고 갔을까. 만찬에 참석했던 삼성 사장들의 면면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삼성에 따르면 지난 20일 포스코와의 만찬에 참석한 사장급 이상 삼성 측 경영진은 총 7명이다.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이재용 사장은 초청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사장단 중에는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노인식 삼성중공업 사장,박준현 삼성증권 사장,고순동 삼성SDS 사장,김철교 삼성테크윈 사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다섯 명의 사장들이 참석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고순동 사장과 박준현 사장은 지난 6월 대한통운 인수전 참여 과정에서 포스코와 인연이 있는 사이다. 고 사장이 맡은 삼성SDS는 인수 컨소시엄 파트너였고,박 사장이 이끄는 삼성증권은 인수전 상대였던 CJ 측과 인수자문계약을 맺었다가 막판 계약을 철회했다. 결국 두 사람의 참석은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삼성과 포스코가 탈락한 데 대한 '뒤풀이' 성격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노인식 사장과 김철교 사장은 포스코와 거래할 일이 많은 중공업(조선),테크윈(방산)을 각각 맡고 있다는 점에서 만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철강재를 많이 쓰는 고객사들인 중공업과 테크윈 입장에서 '을'이지만 이와 동시에 고급 철강재를 공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업이란 점에선 '갑'이기도 하다"며 "정준양 회장 역시 철강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에서 고객사 관리 차원에서 노인식 · 김철교 사장과의 만남을 반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박근희 사장은 왜 참석했을까. 삼성생명은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 얽혀있지도 않고,금융사여서 거래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삼성 관계자는 "박 사장은 삼성그룹 사장들 가운데 최고참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안다"며 "이날 만찬은 두 그룹이 끈끈한 협력관계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미일 뿐 확대 해석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