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고,경제와 민생은 온통 엉망이다. 대한민국의 일상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춰서는 대재앙의 아찔한 블랙아웃(大停電) 위기상황은 완전히 나사 빠진 시스템 그 자체다. 과연 이 정부가 나라를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있는 건지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핵심 측근의 비리 연루는 이명박 정권 또한 레임덕으로 치닫게 하는 방아쇠다. 이전 정권들에서도 예외없었던 악순환이다.

벼락처럼 정치판을 때린 '안철수 쇼크'의 함의(含意)는 간단치 않다. 겨우 며칠 동안의 치고 빠지기식 모노드라마가 우리나라 정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의 50년 인생 이력 하나로 단숨에 대통령감이 됐고,정치판의 명함조차 없었던 시민운동가 두 사람이 범여 · 범야의 대표주자로 서울시장 유력 후보에 떠올랐다. 이미 상식 정치의 틀은 무너졌고 정치주체인 이 나라 정당들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만 커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정치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자초한 일이자 그들만의 착각에 빠져 있는 한국 정치판에 대한 파산선고에 다름 아니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는 꼴이 더욱 말이 아니다. 실물 · 금융 · 자본시장 모두 그렇다. 경기후퇴와 물가폭등,심각한 고용대란은 가장 나쁜 스태그플레이션의 모습이다. 올해 초 전망했던 경제성장률 5%는 이미 4% 달성도 어려운 상황으로 악화됐다. 내년이 더 문제다. 올해보다 성장률이 더 낮은 3%대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최악의 전망이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경제 추락의 탓이 크지만 그것이 합리화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고 우쭐했던 게 불과 엊그제다.

치솟는 물가 또한 관리한계를 넘어섰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3%로 35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정부가 올 들어서만 수십 차례 물가대책회의란 걸 하고 온갖 비정상적 · 시장파괴적 방법까지 동원해 생산기업과 유통업체들을 윽박질렀는데도 그렇다. 끝없는 전셋값 폭등에 집 없는 서민들은 어쩔 줄 몰라하지만 어떤 대책도 먹히지 않고 있다. 이미 1000조원이 넘은 가계 빚은 그야말로 뇌관이다. 모자란 전셋값을 대느라 빚을 늘릴 수밖에 없으니 전세자금과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양상이다. 삐끗하면 우리 경제를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만 커지고 있는 흔적들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기력하고 정치는 여전히 반성 없는 무책임의 극치다. 마음이 벌써 내년 총선과 대선에 가있는 정치권은 다음 세대에 빚폭탄을 떠넘기고 종국에는 그리스처럼 나라를 결딴내자는 무상복지에만 골몰하고 있다. '무상복지론'은 달콤하지만 신기루와 같은 사기(詐欺)다. 무상은 '공짜'이고'보편'이란 말이 덧붙으면 무차별적 · 획일적이다. 교육이든 의료든 그런 공짜가 가능하다면 곧 천국이다. 천국은 현실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정부는 그 말도 안되는 정치권의 억지와 탈선에 맥없이 주저앉아 감세철회,반값 등록금 등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최소 수혜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돈을 벌어들이는 성장엔진이 힘차게 돌지 못하면 그런 최소복지마저도 공염불일 뿐이다. 그런데도 당면한 위기 극복과 새로운 성장전략의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다.

국민들의 삶이 더욱 고단해지고 피로만 쌓이고 있으니 정권은 자꾸 코너로 몰리고 있다. 정부 출범 초의 명료했던 '실용'이 '공정사회'로,다시 (생태계적) '공생발전'으로 국정 아젠다의 방향이 추상적 관념을 더듬는 쪽으로 가는 것부터가 자신감을 잃었다는 증거다. 그러는 사이 정권은 국정통제력 상실의 말기적 증상을 나타내고,안타깝게도 실패의 결말에 다가서고 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회한이 어찌 버나드 쇼의 묘비명뿐이겠는가. 이제 남은 시간도 별로 없는데….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