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해바라기'의 음악을 작곡했던 2006년 이후 저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지난주에는 장인이 세상을 떠났죠.이 이야기는 이제 저의 이야기가 됐어요. 제게서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이죠.작품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어요. 더 깊고 가깝게 다가오죠."(작곡가 페터 쉰들러)

"주제가 '그리움'이라고 했더니 30분 정도 생각에 잠긴 뒤 페터가 연주를 시작했죠.듣자마자 '딱 이거야'하며 무릎을 쳤어요. 독일로 돌아가 이틀 만에 메인 테마곡을 보내왔습니다. 이 친구는 천재가 분명해요. "(배정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독일 재즈그룹 살타첼로의 리더로 유명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페터 쉰들러(51)와 배정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67)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춤과 스토리에 재즈 음악을 입힌 '소울 해바라기'를 구상하고 있던 배 감독이 우연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살타첼로의 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것.

한국인 2세 매니저 덕에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쉰들러에게 배 감독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배 감독의 춤은 이틀 만에 메인 테마를 작곡할 수 있을 만큼 큰 영감을 안겨줬다. 2006년 둘이 만든 '소울 해바라기'는 지금까지 2만3779명의 누적 관객을 기록했다. 해외에서만 1만1958명이 봤다. 지난해 독일 초청공연 8회 전석 매진,올해 네덜란드 루센트 무용극장과 벨기에 국립극장 전석 매진과 매회 기립박수를 기록한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됐다.

쉰들러는 오는 24일과 25일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소울 해바라기'에서 가야금 연주자들과 함께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다.

"한국 음악은 심장을 꺼내놓는 것 같아요. 솔직하면서도 강렬하고,섬세하면서도 울림이 있죠.특히 해금을 좋아하는데 해금 소리는 사람 목소리 같아요. 한국 악기들이 서양의 클래식 악기들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모릅니다. "

'소울 해바라기'의 소재는 그리움.우리 시대에 익숙한 재즈 선율이 가야금과 어우러지며 젊고 역동적인 춤 동작과 만난다. 서정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장면과 폭발적이고 화려한 군무 등 절제와 분출이 공존한다.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리움을 모티브로 인생을 관조하는 이미지가 펼쳐진다.

배 감독은 "마지막에 세상을 떠도는 혼들이 다같이 모여 소주 파티를 하며 한을 풀어내는 장면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쉰들러는 훨씬 전에 '소주 파티'라는 제목의 곡을 작곡해놨더라"며 "신기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라고 회상했다.

쉰들러는 "여러 번의 유럽 공연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게 돼 기쁘다"며 "'소울 해바라기'를 본 독일인들이 얼마나 충격과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기술이나 축구 외에 정보가 많지 않던 그들에게 한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건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에듀케이션(교육)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어놓고 리허설을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하자 그는 "감정은 아주 깊지만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고 한국인들이 소주를 마시며 여러 감정들을 꺼내놓는 것처럼 긍정적인 결말을 갖고 있어 더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