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서는 '킥오프' 전에 연설을 마칠 겁니다. " 지난 8일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부양책' 발표가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미국 프로풋볼(NFL) 개막전과 겹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백악관의 답변이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 치밀한 포석이 문턱에서 NFL 개막식이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호사가는 이를 '오바마의 굴욕'으로 불렀다.

총 4470억달러 패키지로 구성된 이번 경기부양안은 '미국 일자리 법안(American Jobs Act)'으로 포장됐다. 그만큼 고용이 부진하다는 방증이다. 지난 8월의 순(純)신규고용은 영(零)을 기록했다. 이는 1945년 2월 이후 약 66년 만에 처음이다.

오바마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은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제불황이었다. 당시 오바마 후보는 '시장의 과잉'으로 위기가 발생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의 선거 구호,'변화(change)'와 '할 수 있다(Yes,we can)'는 '이성을 통한 국가관리'에 다름 아니다. 즉 정부조직을 통한 시장개입과 개혁으로 집약된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미증유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으며,의료보험 개혁법,금융감독 개혁법 등을 추진했다. 이 중 '경기회복 및 재투자법'으로 명명된 경기부양책은 세금 감면과 보조금,그리고 연방정부 지출로 이뤄진 7870억달러의 방대한 패키지였다.

이들 정책은 정부 규제와 개입 확대를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케인스 경제학'의 특징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반(反)시장적이며,세금을 거둬 지출을 늘리는 전형적 민주당 정책인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케인스적 처방은 더 이상 '전가의 보도(寶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경기부양책의 성공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경기부양책은 아직도 '이삭줍기'식으로 짜여 있다. 예컨대 교사 해고를 미루는 주정부를 지원해 교사 일자리 28만개를 지키겠다는 식이다.

물론 시스템 작동을 위한 정부개입은 당연하다. 금융경색을 푸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부시 정부의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과 오바마 정부의 '금융안정화계획'은 금융경색 해소 차원에서 시의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타 경기부양책은 사정이 다르다. 정책효과가 미미한 가운데 국가부채만 늘렸다.

2010년 현재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누적부채는 93%이며,연방정부 재정적자는 10%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재정여력을 갖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경기부양안의 재원을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증세'로 조달하겠다고 한 것도 재정여력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경기회복이 더딘 것은 정부지출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비자들이 채무 감소와 저축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며,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소비심리 회복은 어려워 보인다. 자산가치 하락의 타격을 받은 소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금이다. 따라서 증세를 통한 재정지출 확대는 소비심리 회복에 역행하는 것이다.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 부품 · 소재 산업의 세계시장 변화율을 직시해야 한다. 2001년 점유율 16%가 2009년엔 10.6%로 곤두박질쳤다. 고용부진은 필연적이다.

오바마는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진 뒤 기업인과의 회동에서 "미국의 성공을 이끄는 제1 엔진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인의 창의성"이라고 했다. 입에 발린 소리가 돼서는 안 된다. '경기부양과 양적완화'라는 산소호흡기를 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경제는 식물경제로 고착된다.

오바마의 선거구호를 뒤집어 봐야 한다. 오바마가 먼저 '변화(change)'해야,미국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Yes,US can.)'. 미국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려면 '케인시안 사고'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 한다. 국가 개입 확대는 개인의 경제적 선택의 영역을 줄이고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킨다. 오바마의 눈물이 요구되는 이유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