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이 있다. '몹시 놀라 넋을 잃다'는 의미지만 원래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땅 속에 매장된 신체는 바람에 흩어진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혼은 주검에 머물지 않으며 고인의 관등성명을 적은 신주에 머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면 방안에 지방을 써 붙임으로써 영혼을 맞이하고,장지에서 신주를 집으로 가져오는 반혼을 통해 혼백을 집으로 다시 모셔온다고 여겼다. 만약 신주를 사찰에 안치한다면 영혼 역시 그곳에 머문다고 봤다. 사람이 죽으면 주검과 영혼이 서로 별개로 움직인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의 전통 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5만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한다. 이들의 사체를 처리하는 방법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급속히 선회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수목장(樹木葬)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수목장은 사체를 화장한 유골 분을 나무 밑에 파묻거나 주위에 뿌리는 자연장의 한 형태다. 올 들어 자연장 활성화를 골자로 한 장사제도 개선안이 확정돼 관심이 높아졌다. 이 방식은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벌초 등 무덤을 관리하는 비용과 노력이 필요 없다. 소비적이고 자연 파괴적인 우리의 장례문화를 가장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친환경 묘지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있다.

그런데 수목장이 우리의 장례문화로 정착되려면 수목장을 해도 조상을 숭배하는 전통사상에 하등 잘못이 없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유교적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국민성을 감안할 때 수목장은 몇몇 환경단체의 메아리없는 아우성에 그칠 수 있다. 부모의 묘를 길지에 두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유교의 효사상과 결부돼 풍수사상으로 정착했다.

한국 본래의 전통 장례는 복장제(復葬制)다. 복장제는 임종에서 출상까지는 유교식으로 하지만 사체를 땅에 바로 매장하지 않는다. 1~3년 동안 나무판자 위나 평상 위에 관을 올려 놓고 이엉을 덮어 놓은 뒤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무덤에 매장하는 방법이다. 복장제는 뼈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뼈를 매장하면 영혼까지 지하에 모시는 것으로 생각한 결과다.

나무뿌리가 감고 있으면 영혼도 상당히 고통을 받으며,그 고통은 후손에게 그대로 전해져 그들 역시 불행해진다는 풍수사상 때문이다. 그런데 수목장은 유골 분을 나무에게 비료로 주겠다는 발상이니 전통 사상에 비춰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영혼은 신주에만 머물러 있다는 신주제도를 다시 부활시켜 화장한 골분은 어떤 방식으로 장사 지내도 후손에겐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는 풍수적 설득이 더욱 필요해졌다.

수목장을 지낼 나무의 선택이 중요한데,키가 큰 나무보다는 어린 나무가 더 좋을 것이다. 늙은 나무는 언제 고사할지 모르지만 어린 나무는 계속 자라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추모의 정도 함께 자란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