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마을'의 악몽…피라미드 사기에 피해 ‘눈덩이’
중국의 BMW 마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의 어느 부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중국 관영 CCTV는 최근 ‘경제30분’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 BMW 마을의 악몽’이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TV 카메라가 비춘 곳은 중국 장쑤성 북부의 쓰훙(泗洪)현. 농민의 1년 평균 소득이 6000위안에 불과한 빈곤 지역인 이곳을 찾은 CCTV 기자는 한 사거리에서 10분 만에 BMW·벤츠·재규어 등 10여 대의 고급 승용차를 봤다고 말했다. 고급 차의 절반은 이 현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스지(石集)향에서 온 것이라는 현지 주민의 말도 전했다. “그때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미쳤어요.”(한 주민) 도대체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올해 춘제(春節) 직후부터 1만 위안을 내면 매달 3000위안을 월 이자로 챙길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간 피해자들이 당한 수법은 전형적인 피라미드 사기. 농민들이 토지 보상비로 받은 돈에다 친지로부터 끌어 모은 돈을 피라미드 조직의 윗사람에게 건네면 이를 받은 중개자는 여기에 자금을 더해 다시 위쪽으로 건네는 식이다. 스지향에 있는 9개 촌의 5800개 가구 가운데 30%인 1740가구가 이 같은 피라피드식 돈놀이에 뛰어들었다. 리타이(李台)촌에선 282가구 가운데 115가구가 유혹에 넘어갔다.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돈놀이 유혹에 빠진 자금만 3억1000만 위안. 지난해 쓰훙현 재정수입(30억 위안)의 10분의 1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렇게 모집된 돈은 고급 차를 사거나 도박하는데 탕진됐다.

◆일확천금의 꿈 안고 돈놀이 유혹에 빠져

'BMW 마을'의 악몽…피라미드 사기에 피해 ‘눈덩이’
부동산 개발 자금으로도 적지 않은 돈이 유입됐다. 이는 이번 대형 사기 사건의 토양이 부동산 개발 붐이 지속되는 가운데 부동산 긴축정책이 시행되면서 마련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긴축으로 자금난을 겪는 부동산 개발상들이 민간 대출 업체의 문을 두드리면서 이 같은 사기 사건이 생겨날 여건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스지향에는 오래전부터 고리대금업이 있었지만 민간 대출 수요가 급증하면서 금리가 치솟고, 이는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돈놀이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민간 대출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이 같은 사기 사건이 재연될 토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 대출이 대형 국유 기업 위주로 이뤄져 민간 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증시 위축과 긴축정책에 따른 부동산 투자 수익성 악화로 갈 곳을 잃은 민간 자금이 고리대금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후유증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옌안 지역에서만 3조 위안에 달하는 은행 대출 자금이 민간 대출 시장으로 유입됐다. 인터넷 대출, 민간 대출과 소액 대출 회사 등의 위험에 대해 경계감을 높여야 한다.”(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 류밍캉 주석). 부동산 거품의 장본인으로 꼽히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몰려 있는 원저우에서도 부동산 투자자금이 민간 대출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민은행의 2분기 설문 조사에서 원저우 시민들의 24.5%는 민간 대출이 가장 합리적인 투자 방식이라고 응답했다.

부동산 투자를 택한 응답은 15.25%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민간 대출이 부동산 투자를 앞질렀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다. 월 금리가 6~8%로 연리로는 72~96%에 이른다. 미국의 더블 딥(경기 반짝 상승 후 다시 침체) 우려와 유럽 재정 위기 우려가 수출 기업들로 하여금 사업보다 돈놀이에 눈을 돌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자본이 공공 시설 등 국유 기업 독점 업종에 진입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민간 고리대금업이 성행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가난한 시골’의 ‘BMW 마을’이라는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보여준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825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