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강대국 그룹인 브릭스(BRICS) 5개국이 금융위기에 처한 유럽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거듭 밝히며 주요 의사 결정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유럽 국가들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요구하는 등 강온 전략을 병행하며 압박하고 나서 주목된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 재무장관들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 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 참석,별도의 모임을 가진 후 성명을 내고 "금융 안정에 대한 현재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또는 다른 국제 금융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위기에 처한 유럽 특정국의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IMF 같은 국제기구 출연금을 늘려서 간접적으로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얘기다.

로이터통신은 IMF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IMF가 자체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3900억달러를 지원할 여력이 있지만 유럽 위기가 이탈리아 등으로 확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지면 8400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브릭스 재무장관들은 "현재의 상황은 단호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는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은 유럽의 자체적인 구제 노력이 선행돼야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두부리 수바라오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신흥국들은 자국의 빈곤부터 해결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개발도상국은 부자 나라의 위기를 해결해줄 위치에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도 "IMF 출연금을 늘리는 문제는 브릭스 국가들뿐 아니라 선진국 그룹인 주요 7개국(G7)에도 똑같이 해당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브릭스 역할론'을 앞장서서 주장했던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도 "유럽 국가들은 신속하고 대담해야 하며 서로 공조할 것을 권고한다"며 "주된 문제들이 유럽에 있는데도 유럽 국가들은 해결책 찾기를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신들은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로 주춤한 사이 브릭스 국가들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내놓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