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HP)의 공동 창립자 데이비드 팩커드는 "어떤 기업도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매출을 늘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성장은 인재를 키워내는 것과 비례한다는 얘기다. '팩커드의 법칙(Packard's law)'으로 불린다.

그러나 HP 이사회가 창업자의 법칙을 연거푸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준비된 최고경영자(CEO) 대신 잇따라 의외의 인물을 내세우고 있지만 회사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HP는 22일(현지시간) 레오 아포테커를 해임하고 이베이 출신 멕 휘트먼(사진)을 새 CEO로 임명했다. CNN머니는 "HP 이사회가 그동안 보여준 행태 중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이 사전에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려 이사회에서 정상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인터넷언론 IB타임스는 "이번 CEO 임명은 드라마틱한 이벤트 같았다"며 "스스로 인재를 준비해 회사 경영을 맡기는,창업자들이 만들어놓은 HP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브스는 "휘트먼이 이베이에서는 성공했지만 HP에서는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휘트먼이 기술 중심의 HP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전혀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HP가 CEO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HP가 전임자인 아포테커를 CEO로 임명할 때 이사회 멤버 중 한 명도 그를 사전에 만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임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은 "HP 이사회는 기업 역사상 최악의 이사회"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아포테커는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광범위한 사업부를 갖고 있는 기업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해 CEO로 11개월밖에 근무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아포테커의 전임자인 마크 허드는 컴팩 인수 후 휘청거리는 HP를 재정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성추문으로 중도 하차하며 HP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이에 앞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CEO를 지낸 칼리 피오리나는 잘못된 CEO 영입의 대표 사례로 거론될 정도다. 인터넷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HP는 제대로 된 CEO감을 키워내지 못해 CEO 경험이 전혀 없는 피오리나를 영입했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컴팩 인수 후유증과 내부 분란 등으로 해임됐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