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중심에는 건물이 있습니다. 세계 어디든 도시의 얼굴과 이미지는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로마는 고대 건축물 덕에 세계적 관광지가 됐습니다. 중국 자금성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자금성이나 성베드로대성당처럼 넓은 땅에 대규모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 대안이 바로 초고층 건물이지요. "

김상대 세계초고층학회장(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은 "파리의 에펠탑에 매년 700만명의 방문객이 몰리고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연간 100만명이 오르는 것은 초고층 건물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한국도 초고층 건물에 대한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학회장은 2009년 10월부터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초고층학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한국 건설사들이 초고층 빌딩 시공 능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설계 부문에선 경쟁력을 좀 더 높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국내 발주처도 한국 건축가들이 응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달 세계초고층학회 콘퍼런스가 열리는데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요.

"세계초고층학회는 매년 정기 콩그레스,콘퍼런스 등을 열고 있습니다. 모임에서는 초고층 건축 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일을 합니다. 예컨대 건물의 높이를 어디에서 어디까지 계산할 것인가 등이지요. 일반적으로 옥상에 있는 첨탑은 건물 높이에서 제외하지만 건물 외부와 이어진 첨탑은 건물 높이에 포함합니다. 88층짜리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110층짜리 시카고 윌리스타워(시어스타워)보다 높다고 판단하는 이유입니다.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는 건물 높이에 포함되는 첨탑 길이가 200m나 됩니다. "

▼초고층 건물이 상징성은 있지만 실용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멋지고 예쁘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공사비도 더 들어갈 수도 있고요. 화재가 났을 때 대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100층 건물을 지을 때 20층마다 피난처를 둡니다. 100층 건물도 20층짜리 건물과 비슷한 환경으로 설계한다는 얘기지요. 상하이에 가면 초고층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런 멋진 건물을 자기들 땅에 지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매우 큽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반도체,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회사들과 경쟁하듯 건축 분야에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삼성물산이 시공한 160층짜리 부르즈 칼리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150층 이상 건물입니다. 롯데 수퍼타워 건축 인 · 허가가 10년 이상 걸리고 있는 것도 초고층에 대한 인식의 부족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

▼초고층 뉴트렌드는 어떤 게 있습니까.

"친환경,녹색 빌딩이 초고층 분야에서도 이슈입니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물을 짓느냐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초고층 건물 외부에 대형 날개가 달린 풍력 발전기 같은 시설을 달아 에너지를 생산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소음 탓에 어려움은 있지만 다양한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

▼초고층은 몇m가 한계라고 보십니까.

"사우디아라비아는 1㎞짜리 킹덤타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머지않아 1마일(약 1.6㎞)에 도전하는 회사도 나올 겁니다. 하지만 실제 가치도 생각해야지요. 너무 고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비경제적일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단순히 실용성만 따지면 50층 정도,상징성까지 감안하면 100~150층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

▼한국업체들의 초고층 기술 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초고층 건축 분야에는 설계,엔지니어링(구조 · 설비),시공 등이 있습니다. 시공은 우리가 세계 1등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설계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A+ 정도라면 우리는 A-에서 B+ 정도로 여겨집니다. 아직은 경험이 적기 때문이지요. 미국 회사들은 중국,두바이 등지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공항 설계도 대부분 그런 회사들이 하고 있고요. 국내 설계업체들은 아직 큰 사업에 많이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국내 업체들이 성장하려면 관련 업계도 노력할 점이 있습니다. 사업자들이 입찰에 부칠 때 국내 업체를 아예 제외할 게 아니라 해외에서 2곳을 불렀다면 국내에서도 1곳을 초청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거죠.안 되더라도 자꾸 경험해 봐야 경쟁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

▼정부에서 지원해야 할 것은 없습니까.

"최저가 낙찰제 같은 제도는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억원 정도가 들어가는 공사를 수주한다면 11억원 정도에는 낙찰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 봉급도 주고,시공사의 하도급 회사들도 합리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8억원에 수주한다면 그 피해는 하도급 회사들에 넘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격을 깎다 보니 자칫 공사가 부실해지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임금의 60~70% 정도밖에 못 받고 있습니다. 정부가 그런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 세금 줄인다는 취지는 좋지만 산업 인력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