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치솟은 초고층 빌딩은 상징성을 갖는다.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대만의 '타이베이 101' 등은 국가적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초고층 빌딩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됨에도 너도나도 지으려는 이유다. 경제적인 측면도 초고층 빌딩 신축 경쟁을 촉발시키는 요인이다. 국내에서 63빌딩이 그랬듯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빌딩은 그 자체로도 관광상품이 된다. 대만 방문객들의 대부분은 타이베이 101을 찾는다.

초고층 빌딩의 역사는 1931년 쓰여지기 시작했다. 세계 첫 100층 건물(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 381m)을 지은 인류는 1974년 400m(미국 윌리스 타워)를 넘긴 데 이어 2004년 500m(대만 타이베이101)를 돌파했다. 작년엔 800m(두바이 부르즈 칼리파)로 기록을 높였고 현재 1000m(사우디아라비아 킹덤 타워)를 넘는 건축물이 추진되고 있다. 초고층 건물의 의미도 변하고 있다. 강부성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는 "문명과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던 초고층 건물이 일상적인 삶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한국을 주축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가 초고층 시대 주도

100층 건물을 추진 중인 곳은 많다. 우리나라에서만 10여개의 100층 이상 빌딩이 추진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실제 완공된 건물은 많지 않다. 전 세계에 지어진 100층 이상 건물은 7개에 불과하다. 높이 기준으로 400m를 넘는 건물은 12개에 그친다.

초고층 건물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아시아로 완전히 넘어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은 1931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으면서 100층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400m 이상 12개 건물 중 미국에 있는 것은 2개다. 나머지 10개가 아시아에 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초고층 건립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아시아 국가들이 적극 나서면서 생긴 결과다.

초고층 건립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400m 이상 건물의 절반인 6개가 중국에 있다.

100층 이상 건물이 추진되고 있는 곳도 대부분 아시아다. 중국에선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100층 이상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잠실 롯데수퍼타워,용산 국제업무지구 랜드마크빌딩,상암DMC 서울라이트,서울숲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송도 인천타워,부산 롯데월드,해운대관광리조트,WBC솔로몬타워 등 1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오일머니를 넉넉하게 확보한 중동 국가들도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하나둘 초고층 건립에 나서고 있다.

최원철 대우건설 건축사업본부 부장은 "유럽 재정위기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초고층 건립이 속속 취소되거나 잠정 중단되고 있다"면서도 "하나의 건물에 주거 · 상업 · 업무 · 여가 기능이 모두 들어가는 '콤팩트시티'의 장점이 많아 초고층 건축물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징물에서 생활공간으로

전문가들은 초고층 건물이 국가의 힘을 자랑하는 수단,경제력을 과시하는 상징적 건물 수준을 넘어섰다고 강조한다.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사무용도로 시작된 초고층 건물은 지금 주거용도로도 혼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봐도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80층),해운대 아이파크(72층),목동 하이페리온(69층) 등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이 즐비하다. 초고층 건물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도시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화재 바람 지진 등 자연재해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고,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조종수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초고층이 인류문명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새로운 삶의 공간을 개척한 게 사실이지만 미래 세대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이 되기 위해선 더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초고층을 지으려는 전문가들의 고민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가 다음달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하는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 국제 콘퍼런스'의 주제도 초고층 건축물의 안전(safety),환경(green),인간성(humanity)이다. 김상대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 회장(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은 "초고층 건물은 더 안전해져야 하고,친환경적이어야 하며,인간과의 소통을 이어주는 수직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며 "전 세계 초고층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초고층 건물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심도 있게 토론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