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디자이너가 설계한 건축물도 외관 유지를 못하면 빛을 발할 수 없다. 넓은 시야와 풍부한 자연광 유입이 장점인 커튼월 건물은 한두 달만 지나면 외벽에 먼지가 쌓여 디자인의 의미가 퇴색된다. 차별화한 외벽의 요철은 몇 달만 지나면 오물이 쌓여 골칫거리가 된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선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층 빌딩을 설계할 때 외벽 청결유지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설계 단계에서 검토한다. 전문용어로 창호세정시스템(window washing system)으로 불린다. 건물의 최상층이나 중간층에 창문을 닦는 사람이 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설치하고 줄로 연결해 내릴 수 있는 기계장치를 구비하는 게 기본이다.

국내 고층 건축물은 창호세정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편이다. 대부분 옥상에 줄을 묶어 고공에서 매달려 유리를 닦거나 페인트 작업을 한다. 이런 작업방식은 안전사고가 우려될 뿐만 아니라 작업 완성도도 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건축물인 '부르즈 칼리파'는 사막의 모래폭풍도 견디는 창호세정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40층마다 수평레일이 달려 있다. 전체 외벽을 청소하는 데 36명이 동원돼 3개월이 걸린다.

창호세정시스템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플랫폼을 하부로 내려주는 '붐'이 옥상층에 있는 지지대인 '데빗'에 고정돼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트랙을 타고 창문 닦는 사람이 건물 외곽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트랙형이 많이 쓰인다. 첨단기술이 적용된 예로는 미국 휴스턴의 다국적 에너지 회사 엔론의 본사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기존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최상층을 따라 형성된 커다란 처마 때문에 붐의 길이가 너무 길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처마 하부에 트랙을 설치해 자동 로봇이 유리면을 청소하도록 첨단기술을 도입했다.

안준석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엔론 본사처럼 창호세정 시스템은 시스템의 유형이나 운영에서 건축물의 형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며 "붐을 지지하는 데빗,케이블을 안정시키는 타이백 등 각 요소들이 건축물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