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스코틀랜드 북동부 항구도시 애버딘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쪽 고지대인 ‘하이랜드’(Highland)방향으로 2시간 정도 달리면 디사이드(Deside) 지역이 나온다.웅장한 그램피언 산과 맑고 깨끗한 디강(River Dee)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이 곳엔 규모는 작지만 16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기품있는’ 증류소가 있다.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위스키 ‘윈저’의 원액을 만드는 ‘로열 라크나가’(Royal Lochnagar) 증류소다.

23일(현지시간) 찾은 증류소는 울창한 숲속에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었다.‘로열 라크나가’ 설립자인 존 벡이 1826년 이 장소를 처음 봤을 때 위스키를 제조하기에 “신이 내린 환경”이라고 감탄했다는 얘기에 공감이 갈 만큼 풍광이 뛰어났다.세계 최대 위스키회사인 디아지오에서 최고의 위스키 블렌딩 ‘명장’ 반열에 오른 ‘마스터 블렌더’(Master Blender)인 더글러스 머레이씨는 “그램피언 산자락의 깨끗한 공기와 이 지역에 흐르는 크리스털빛 샘물은 윈저등 프리미엄 위스키를 만드는 젖줄”이라고 소개했다.

이 증류소는 디아지오가 소유한 100여개의 위스키 증류소 가운데 가장 작은 크기의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고 생산량도 연간 50만ℓ정도로 가장 적다.규모로만 치면 스코틀랜드에 있는 증류소 가운데 3~4번째로 작은 곳이기도 하다.앤드류 윌섭 ‘로열 라크나가’ 생산 총괄 매니저는 “증류소 일대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더이상의 생산시설 증축이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최고의 맛과 품질을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스코틀랜드의 많은 증류소들이 자동화 시설을 도입했지만 이 곳에선 창립 초기부터 어져 내려온 전통 방식의 각종 제조 기구들을 약간만 변형하고 보수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곳에서 위스키를 제조하는 인원은 고작 7명이다.윌섭 매니저는 “근무 경력이 35년부터 6개월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위스키 제조의 달인”이라며 “6개월된 신참도 아버지가 이 곳에서 평생을 근무한 집안 내력때문인지 누구보다 위스키를 더 잘 안다”고 말했다.이 증류소는 영국 왕실에서 맛을 인증한다.증류소 이름에 붙는 ‘로얄(Royal)’이란 칭호는 바로 영국의 ‘왕실 인증서(Royal Warrant)’를 받은 데서 비롯됐다.1848년 이곳을 방문한 빅토리아 여왕과 왕실 가족들이 여기서 생산된 위스키의 맛과 품질에 반해 인증서를 수여했고 이후 에드워즈 7세와 조지 5세도 같은 칭호를 내렸다.1995년에는 찰스 황태자가 증류소 설립 150주년을 기념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현재도 엄선된 제품을 영국 왕실에 공급한다.이 증류소는 현재도 영국 왕실에 엄선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영국 왕실에서 인증한 증류소는 스코틀랜드를 통틀어 이 곳을 포함해 세 곳에 불과하다.

이 곳에서 생산된 위스키 원액중 대부분은 ‘로열 라크나가’란 브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로 만들어지고 10%가 윈저 원액으로 사용된다.머레이씨는 “이 증류소의 원액을 기본으로 20여가지의 서로 다른 종류의 위스키를 섞어 윈저를 만든다”며 “연산이 높을수록 이 곳 원액의 비중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그는 “윈저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만든다”며 “그런 맛을 내기에 이 증류소의 원액이 적당하다”고 강조했다.

로열 라크나가에서 생산된 원액이 윈저에 사용된 것은 2009년 5월부터다.당초 한국 시장만 겨냥해 탄생한 윈저는 디아지오 본사로부터 경쟁력을 인정받아 중국과 동남아 지역 등 세계 각국에 수출되기 시작한 시점이다.디아지오코리아 관계자는 “윈저의 글로벌 브랜드화가 진행된 이후부터 로열 라크나가에서 생산된 원액을 사용하고 있다”며 “로열 라크나가는 윈저의 심장이자 고향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