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 갑부인 량원건(梁穩根) 산이(三一)그룹 회장이 차관급 정부 요직에 진출한다. 개혁 · 개방 이후 꾸준히 성장한 '붉은 자본가'들이 본격적으로 정계로 진출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부와 권력을 함께 가진 '정상'(政商)의 등장에 대해 중국 내에서도 논란이 뜨겁다.

◆최고 갑부에서 핵심 권력으로

중국 경제망은 25일 후난성 당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정부가 최근 량 회장을 고위직에 임명하기 위한 인사조사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량 회장은 중국 부자에 대한 민간조사기구인 후룬이 발표한 올해 중국 갑부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보유자산은 약 700억위안(12조원)으로 추정됐다. 량 회장이 정부안에서 어떤 직책을 맡을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남방일보는 "량 회장이 행정을 책임지는 부부장급(차관급) 직책에 임명될 것"이라며 이는 민영기업가가 당과 정부의 고위직에 진출하는 첫 사례라고 전했다. 푸싱주 푸단대 교수는 "민간기업인이 국가 권력의 핵심으로 발탁된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에서의 민간경제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붉은 자본가'들의 정치 참여 본격화

량 회장의 정부 고위직 진출은 "민영기업가들의 정계 진출에 물꼬를 튼 사건"(해방망)으로 평가된다. 과거 리이중(李毅中) 중국석유화학(SINOPEC) 회장이 공업정보화부 부장(장관)을 역임했고,장루이민(張瑞敏) 하이얼 회장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국영기업인이었다.

민영기업가의 정치 참여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산당은 21명의 민영기업인을 처음으로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으로 선출했다. 이후 2000년에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공산당은 노동자 · 농민,지식인뿐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도 대표해야 한다"는 '3개 대표론'을 제시하면서 기업인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졌다. 2003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민영기업인 230명이 참여,전체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신문만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최고 부자 1000명 중 154명이 전인대와 정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왕젠린(王健林) 완다(万達)그룹 회장,루즈창(廬志强) 판하이(泛海)그룹 회장,왕위숴(王玉鎖) 신아오(新奧)그룹 회장, 류한위안(劉漢元) 퉁웨이(通威)그룹 회장 등은 현직 정협 상무위원이다. 또 션원룽(沈文榮) 샤강(沙鋼)그룹 회장 리덩하이(李登海) 덩하이종예(登海種業) 대표 등 7명은 제17차 전국대표대회 당대표를 맡아 이들의 고위직 진출도 시간문제라는 평가다.

◆권력과 부,하나를 포기해야

중국에서는 국가공무원이 영리활동에 종사하거나 참여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따라서 산이그룹 회장의 직무를 누가 이어받을지,량 회장이 보유지분을 어떻게 정리할지 등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재무평론가 예탄은 "량 회장이 공권력까지 갖게 되면 기존의 기업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일을 공평하게 처리한다는 것을 보증하려면 산이그룹 주식을 보유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보유 주식을 외아들인 량예중(梁冶中 · 26)에게 넘기고 회장직도 물려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량 회장의 정계 진출에 대해 "민영기업가의 정치 참여는 정치 민주화의 진일보"(이센룽 홍콩대 경제금융학원 교수)라는 '긍정론'과 민영기업가의 정치적 능력은 관료보다 못할 것이라는'부정론'이 맞서고 있다고 남방일보가 전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