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산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장기 불황(recession)'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세계 주식시장은 물론,주가와 반대로 움직이던 귀금속 가격마저 기록적인 폭락세를 보였다. 경기 침체가 물가상승률을 낮추고 귀금속 수요마저 갉아먹을 것이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2008년 금융위기를 닮아가는 경기 신호 속에 주식시장이 중요한 변곡점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주가 급락에 대한 우려와 강력한 정책 공조에 대한 기대가 팽팽히 맞선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반영한 시장 분위기를 틈타 선택적 저가 매수에 나설 시점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2008년 3월 vs 2008년 7월

최근 원 · 달러 환율 급등과 원자재 가격 급락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인 국내 주식시장에 상반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위기 이후 첫 환율 급등세는 주가 반등을 가져왔던 2008년 3월 상황과 흡사하지만 원자재 가격 급락은 폭락장을 예고한 같은 해 7월의 움직임과 닮아 있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 당시 환율 급등은 주가 상승에 선행해 나타났다"며 "만약 1~2주 안에 그리스에 대한 80억유로 자금 지원이 승인되면 시장은 2008년 3월과 같은 '위기의 소강 상태'에 접어들며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008년 3월 이후 두 달 동안 코스피지수는 300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반면 원자재 가격 움직임은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공포를 떠올린다. 당시 국제 상품가격은 리먼 파산 두 달여 전인 7월 초 연중 고점을 기록한 뒤 급작스럽게 하락 반전하면서 위기를 예고하는 역할을 했다. 박 연구원은 "최근 국제 상품 가격의 급락은 2008년 9월과 유사한 흐름"이라며 "2008년 3월을 재연하느냐 아니면 9월 상황을 연출하느냐는 그리스의 운명이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공조 실망 vs 물가 안정 기대

주말에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는 오히려 세계 각국의 정치적 공조 의지와 능력에 대한 의심을 키웠다. 각국이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힘을 합치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어떤 가시적인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지표에 대한 실망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경우 새롭고 강력한 공조 방안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수석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경우 각국의 물가 상승 부담도 완화되기 때문에 유동성 공급 등 정책 수단을 펼칠 여력이 커진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리먼사태 이후 미 주가의 본격적인 반등은 글로벌 각국 경기부양책 발표와 더불어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채권 금리는 장기물 위주로 하락하면서 경기 침체의 장기화 '전조'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올 들어 지속된 금리 하락은 채권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고배당 우량주의 상대적 매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45%로 SK텔레콤 KT KT&G 등 일부 고배당주의 올해 예상 배당수익률(4% 이상)을 밑돈다.

이주호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 수준은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반영해가고 있다"며 "저점 매수 기회를 타진해 나가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업종별로는 제품값 반등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반도체주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기대되는 자동차주,내수 확대 조치가 예상되는 중국 소비 관련주에 관심을 둘 것을 추천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