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합계 언더파를 친 선수는 단 한 명.코스가 너무 어려워 오버파 우승이 나올 것이란 예측이 강했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역전 드라마'였다.

제33회 메트라이프 · 한국경제KLPGA챔피언십(총상금 7억원) 최종라운드가 펼쳐진 2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트룬CC(파72 · 6712야드)는 맑고 쾌청했다. 박빙 승부를 예상한 듯 마지막 챔피언조인 장하나(19) 유소연(21) 양수진(20)조에 구름 갤러리가 따라붙었다.

합계 1언더파로 유일한 언더파를 기록하며 1타차 단독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돌입한 장하나가 3번홀(파5)에서 세 번째샷을 그린 우측 벙커에 빠뜨리며 보기를 범해 유소연,양수진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이후 3명은 버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박진감 넘치는 우승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10위권 밖에 있던 의외의 선수가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합계 4오버파 211타로 공동 11위였던 최혜정(27)은 전반에 5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후반부터 어려운 홀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의 상승세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최혜정은 보란듯이 10번홀에서 5m 버디를 잡은 뒤 본격적인 선두 추격의 고삐를 죄었다. 14번홀에서 3m 버디를 추가한 최혜정은 15번홀(파3)에서 4번 하이브리드 티샷을 홀 바로 옆 20㎝에 떨궈 합계 4언더파로 단독선두에 나섰다.

이후에도 버디 행진은 거침이 없었다. 16번홀에서는 5m 버디퍼팅을 성공시켜 14~16번홀에서 3연속 버디를 했다. 그는 18번홀에서 7번아이언 두 번째샷을 홀 바로 옆 30㎝에 세우는 '신기'를 연출하며 대회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10번째 버디는 양수진을 1타차로 제치고 우승을 확정짓는 '1억4000만원짜리 버디'였다. 최혜정은 "오랜 투어 생활을 하면서 대회를 많이 하다보니 여간해서는 긴장하지 않는데 18번홀 세컨드샷을 할 때는 긴장이 됐다. 볼이 핀에 붙을 때는 짜릿했다"고 말했다.

이날 최혜정이 기록한 10언더파 62타는 올 시즌 18홀 최소타 신기록이다. 국내 18홀 최소타는 11언더파 61타로 2003년 파라다이스여자인비테이셔널 2라운드에서 전미정이 기록했다. 최혜정은 우승상금 1억4000만원을 보태 상금랭킹 31위에서 7위로 수직상승했다. 2003년 9월 KLPGA 정회원이 된 최혜정은 협회 규정(입회 후 2년간 해외 진출 금지)을 어기고 2005년 미국 LPGA 2부투어에서 뛰어 2년간 국내 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국내로 복귀했으며 이번 우승으로 그동안의 아픔을 말끔히 털어냈다.

양수진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사흘간 실수를 줄이는 플레이를 펼쳤는데 현재 샷 감각이 좋기 때문에 4라운드에서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겠다"며 "파5홀에서 '2온'을 시도하는 등 5언더파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양수진은 장담한 대로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잡아내며 5언더파 67타를 쳤으나 합계 5언더파 283타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유소연은 경기 전 "이 코스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못 친다고 실망하지 않으면 버디 기회가 올 것이다. 쇼트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는 홀에서 타수를 줄여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보기 없이 버디 3개를 잡으며 3언더파 69타를 쳤으나 합계 3언더파 285타로 3위에 그쳤다.

이로써 국내 여자프로골프는 또 시즌 2승자가 탄생하지 못했으며 14개 대회 우승자가 모두 다른 '춘추전국시대'를 이어갔다.

평창=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