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달러 자금 사정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본격화한 이달 중순 이후 보름간 국내 은행이 해외에서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할 때 내야 하는 가산금리가 1%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 원 · 달러 환율이 최근 하루 20~30원씩 뛰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부도위험을 뜻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2년3개월 만에 200bp(1bp=0.01%)를 넘어서는 등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달러 펀딩' 비상

은행 '달러 구하기' 비상…외화채권 가산금리 보름 새 1%P 급등
하나은행은 이달 초 자본 확충을 위해 4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 유로화 표시 채권 발행을 추진하다 포기했다. 대신 원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외 투자자들과 접촉한 결과 가산금리가 너무 높다는 판단에서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화채권 발행금리는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가 0.2%포인트,가산금리가 0.6~0.7%포인트 뛰어오르며 최근 2주일 새 무려 1%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신한은행은 1억달러 이상의 달러 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고 우리은행과 국민은행도 외화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시중은행의 한 외화담당 임원은 "지금 상황에서는 외화채권 발행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편"이라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조금이라도 안정을 되찾으면 그때 시도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소 단기 외화 차입의 만기 연장을 잘 해주던 유럽계 은행들이 "우리 사정이 더 급하다"며 하나둘 연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금융당국이 지난 23일 시중은행 외환 담당자들을 불러 "금리에 연연하지 말고 최대한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업도 비상

시중은행에 비해 자금 조달 여건이 좋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도 가산금리 상승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최성환 수출입은행 국제금융부장은 "추석 전인 지난 8일만 해도 10년 만기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할 때 미국 국채금리에 245bp의 가산금리를 더해 발행했는데 지금 같으면 300bp 이상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최근 해외에서 공모 채권을 발행하려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그만 뒀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모채권 발행의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를 찾기 쉽지 않다는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수재 산업은행 국제금융실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아예 달러 펀딩이 안 됐는데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며 "다만 가산금리가 평균 50bp 이상 오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표는 리먼 사태만큼 불안

금융시장의 각종 지표는 3년 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를 연상케 할 정도다.

한국의 국가부도 위험을 뜻하는 CDS 프리미엄은 23일 뉴욕시장에서 202bp로 프랑스(197bp)보다 높았다. 그동안 프랑스의 CDS 프리미엄이 한국보다 20~30bp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프리미엄 역전'은 미국과 유럽 위기가 한국으로 옮겨붙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가산금리도 '리먼 사태' 때와 비슷하다. 2014년 9월물 외평채 가산금리는 현재 217bp로 리먼 파산 다음날인 2008년 9월16일(229bp)과 별 차이가 없다.

환율은 9월 들어 100원가량 뛰었다. 2008년 9월 한 달간 상승폭인 118원에 육박한다. 코스피지수는 8월 이후 475포인트(21.9%) 떨어졌다. 2008년 5월 중순 이후 4개월간 502포인트 하락한 것과 닮았다.

주용석/이상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