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평면 위에 3차원적 공간을 재현한 허상이다. 그런데 그 속의 허상이 다시 거울에 비쳐진다면 그것은 이중의 허상이 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좌우가 뒤바뀐 기만적인 것이다. 옛 사람들이 '명경지수(明鏡止水 · 거울처럼 맑은 물)'에 자신을 비춘 것은 그를 통해 반성하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양화가 정창균 씨(43)가 '명경지수' 시리즈로 관객에게 다가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가려진 진실을 맑은 거울에 비쳐봄으로써 본래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한 물리적 거울에 만족하지 않고 여기에 책이라는 마음의 거울을 덧붙인다. 눈앞은 물론 마음 속의 시야가 투명해야 우리는 다음에 내디딜 일보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침 정창균 작가의 그림에 주목하는 이유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