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를 끼고 있어 그나마 경기를 덜 탄다는 미국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주.이곳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 한파에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가구당 연평균 소득이 10만달러를 웃도는 페어팩스 카운티 곳곳에 주택압류 표지판이 수두룩하다. 부자동네로 소문난 매클린의 타운레인 로드의 한 단독주택은 소유자가 주택담보대출금(모기지)을 갚지 못해 은행에 압류된 후 45만달러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

이 집 저 집 마당에 '팝니다(for sale)'란 알림판이 걸려 있지만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끝이 안 보인다. 주택시세가 모기지보다 싼 소위 '깡통주택'이 시장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신용정보업체인 코어로직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미국 전역의 '깡통주택'은 약 1100만가구.전체 주택 소유자의 22.5%에 해당한다. 깡통주택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라스베이거스로 무려 82.7%에 달했다.

깡통주택들은 악성 매물로 쌓여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리얼티트랙은 7월 현재 모기지 상환이 연체된 주택이 438만가구,압류가 임박한 주택은 350만가구,압류 절차를 밝고 있는 주택이 215만가구라고 집계했다. 모기지를 연체하다 결국 못 갚겠다고 나가떨어진 주택 소유자들은 지난 8월 월간 기준으로 평균 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뉴저지주는 42%,인디애나주 46%,캘리포이나주는 55% 증가했다.

악성 매물로 나오는 압류주택은 주택 가격을 짓눌러 주택경기 회복을 더디게 한다. 미 상무부는 8월 신규 주택건설이 57만1000가구(연율)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부동산 붐이 한창이던 2006년 월 평균치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리얼티트랙의 릭 샤그라씨는 "주택시장이 회복돼 안정되기 위해선 악성 재고 물량을 털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경기 부진은 가계 소비 지출마저 위축시켜 전반적인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연방주택금융공사는 2009년부터 저금리로 기존 모기지의 최대 20%까지 재융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450만건이 승인되는 데 그쳐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은행들이 신용도가 높지 않으면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미 중앙은행(Fed)은 대출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다면 230만건이 더 승인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 들어서도 7월 현재 겨우 83만8000건이 승인됐다. 최소한 400만주택이 재융자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다.

Fed는 보유 중인 단기 국채 4000억달러어치를 시중에 팔아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정책을 지난 21일 발표했다. 장기 모기지 금리를 더 낮춰 주택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 주된 정책 목표 중 하나다. 그러나 30년 만기의 모기지 고정금리가 연 4%대 초반으로 40년 만의 최저로 떨어진 상황에서 실효성이 클지 의문이다. 실업률이 9.1%에 달하고 경기 전망이 불확실한 마당에 초저금리를 활용할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스콧 브라운 레이먼 제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고용시장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주택경기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