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황당한 테마주
북방외교가 활발하던 1987년 말과 88년 초 주식시장에 '만리장성 4인방'이란 테마주가 등장했다. 처음 불을 지른 건 대한알루미늄이었다. 중국이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한다는 소문과 함께 알루미늄 새시를 전량 납품한다는 이유로 급등하기 시작했다. 고무신 제조업체 태화가 뒤를 이었다. 인부들의 신발을 대기로 했다는 루머가 돌면서다. 이어 간식으로 호빵을 납품한다며 삼립식품 주가가 치솟았다. 대미를 장식한 건 한독약품이었다. 인부들이 호빵을 먹다 체할 때 쓸 소화제로 '훼스탈'이 공급된다는 얘기였다.

2001년 9 · 11 테러로 전쟁 테마가 형성됐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크레인 등을 만드는 광림특장차의 회사 이름에 '특장차'가 들어 있던 까닭에 특수장갑차 생산업체로 잘못 알려지면서 매수세가 몰렸다. 더 황당한 건 콘돔 제조업체 유니더스였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급등했다.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가면 콘돔을 많이 사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프간에선 콘돔을 사용할 기회가 없다는 반론이 나오자 더 기발한 논리가 보태졌다. 총구에 모래가 들어가므로 콘돔을 총구 막는 데 쓴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조차 믿지 않을 薇絹� 수준의 논리다. 그런데도 추격매수했다 손해 본 투자자가 속출했다. 시간이 흘렀어도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이다. 요즘 주식시장에 출몰하는 정치인 테마주만 봐도 그렇다. 안철수연구소가 주목받은 것은 그렇다 쳐도 박원순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있던 풀무원홀딩스,박 변호사의 동기가 회장인 휘닉스컴까지 시세를 냈다.

두올산업,한국선재,홈센타 등이 김두관 테마주로 분류되며 등락을 거듭하는 이유도 우습다. 김 지사가 차기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경남 부산 일대에 근거지를 둔 종목들이 테마를 형성했다. 나경원 테마주로 꼽히는 오텍도 다를 게 없다. 나 최고위원이 "저상버스가 많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하자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오텍에 매수세가 몰렸다. 당국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테마를 이루며 급등했던 종목은 실체가 드러나면 폭락한다. 작전세력이 개입해 치고 빠지는 경우도 흔하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고 급등한 주식은 언젠가는 떨어진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테마주 투자로 한몫 잡아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