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닥터 둠'을 보고 싶다
뉴욕특파원으로 일하던 2007년 2월 초였다. '닥터 둠(Dr. Doom)'으로 유명한 대표적 비관론자 마크 파버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글로벌 증권시장이 몇 개월 안에 심각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며 "지금은 주식을 팔 때"라고 단언했다. 이유를 묻자 "거품이 부풀어올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탐욕에 젖어 있다"는 말도 했다. "1987년 미국 블랙 먼데이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에도 모두 주식을 사려고 덤볐다"는 경험담도 덧붙였다.

당시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 중국 · 한국 증시가 상승세로 내달리던 때였다. 각국 주가가 사상 최고치 경신을 눈앞에 둔 터라 낙관론만 가득했다. 온통 '사라'는 권유만 있을 뿐 '팔라'는 목소리는 희미했다. 아무리 블랙 먼데이와 외환위기를 예측했던 파버라고 해도,그의 말에 귀기울인 사람은 적었다.

월가의 관심은 온통 골드만삭스의 애비 조지프 코언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쏠렸다. 코언은 '강세장의 여제(女帝)'였다. 그는 1990년대 '최장기 미국 증시 호황'을 예언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정보기술(IT) 거품 논란이 일던 1998년에는 "증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됐다"며 강세장 지속을 예견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코언이 '사자'를 외쳤으니,시장은 그의 말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졌다. 2008년 3월엔 베어스턴스가 퇴출됐다. 파버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함께 '예지력을 가진 닥터 둠'으로 각광받았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뒤에도 강세장의 소신을 꺾지 않았던 코언은 베어스턴스와 함께 증시에서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파버의 승리였지만 두 사람의 닮은 점은 많았다. 시장을 바라보는 기준이 확고하다는 점이 그랬다. 누가 뭐라든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가는 점도 닮았다. 남들과 다른 시각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점도 비슷했다.

국내 증시는 다르다. 주가가 오르면 온통 '고(go)!'소리만 들린다. 지난 5월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목표 지수 높이기' 경쟁을 벌였다. 지금은 정반대다. 시장이 불투명해지자 '목표지수 낮춰 잡기' 경쟁이 펼쳐진다. 마크 파버도,애비 코언도 국내엔 없다.

증시만이 아니다. 저축은행 사태도 비슷하다. 한때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렸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당국자들도 선뜻 제동을 걸지 못했다. 그 결과 저축은행들은 저축은행업 존폐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단자사 종금사 리스사들이 외형경쟁을 벌이다가 역사에서 사라졌듯이 말이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우리 정치권과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재정에 문제가 생길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무한 복지 경쟁'을 벌인다. 무슨무슨 신드롬이 일면 정강정책은 물론 정당정치 근간조차 팽개쳐 버린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다. 한동안 이슈가 됐던 한진중공업 사태,제주 강정마을사태,서울시 무상급식 논란도 결국은 쏠림현상과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소신있는 사람의 부재탓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일단 열차가 출발하면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시장에서도,사회에서도 달리는 열차를 막아설 수 있는 사람,'닥터 둠'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