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체들이 극심한 업황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 자금조달을 서두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부채 위기로 관련 노선 운임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미래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SK해운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2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원유 수송선 중심의 선단을 운영하는 SK해운은 계열사와의 장기계약 덕분에 국내 주요 해운사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이익을 내왔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벌크선 영업을 해온 영국 현지 법인이 급격한 운임 하락으로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자금부담(2008년 이후 총 3억7000만달러의 유상증자 참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은 다음 달 한진에너지 지분(1598억원)을 전량 처분하고,11월에는 4720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 한진해운은 유럽과 미국 노선의 수송 의존도가 70%에 달해 선진국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188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상하이항운교역소 컨테이너운임지수(CCFI)에 따르면 유럽지역 운임은 최근 1년간 37%,미주 지역 운임은 22% 하락했다.

올 상반기 697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현대상선도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지난 7월 32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올 4월 같은 목적으로 2600억원을 발행한 이후 3개월 만이다. 벌크선 중심의 선단을 운영하면서 비교적 나은 업황을 경험하고 있는 STX팬오션은 지난달 1500억원의 시설자금을 회사채로 조달했다. 이달 초에는 안정적인 선박건조 자금 마련을 위해 5500억원 규모의 선박금융 계약을 체결했다. 조선 · 해운 중심 사업구조를 지닌 STX그룹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계획을 중도 포기했다.

해운업계의 적극적인 현금확보 노력은 사상 최악의 업황을 기록했던 2009년과 같은 상황이 도래할 것에 대비하려는 성격이 짙다. 윤민수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올 들어 해운업계의 신용위험이 높아지면서 2009년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며 "컨테이너 업황의 하락과 벌크 업황의 침체는 당분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해운사들은 금융위기 발발 이듬해인 2009년 세계 경제성장률의 급격한 악화로 대규모 손실을 냈다. 당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영업손실은 각각 9425억원과 5653억원에 달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