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일단 구하고 보자"…은행 비상체제 돌입
시중은행의 A자금부장은 26일 책상 앞에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수차례 회의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A부장은 "시장 변동성 때문에 불확실성이 커진 게 큰 문제"라고 걱정했다.

은행들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달러 고갈'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국제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외화채권 발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거래하고 있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 빌려준 외화자금마저 회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 은행 자금담당 부행장은 "1억~2억달러 규모의 외화채권을 발행하려고 했지만 조달금리가 지나치게 높아진 데다 매수 주체를 찾기 어려워 포기했다"며 "시장이 다소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은행의 자금담당 본부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외화채권 발행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라며 "1~2개월 후 시장이 반짝 좋아지면 그때 발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놨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역시 현재 홍콩에서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기 위한 수요 조사(태핑)를 진행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은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게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다음주께 일본에서 엔화표시 채권(사무라이본드)을 500억엔어치 발행할 계획이다. 산은 관계자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가산금리가 소폭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중은행들은 외화채권을 발행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차입선을 다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S은행 관계자는 "외국의 대형 금융사로부터 바이래터럴론(상호 대출)이나 클럽론(차관단 대출)을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신용을 바탕으로 한 대출 성격이어서 외화 조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해외 금융회사들과 커미티드라인 협약도 확대할 계획이다. 커미티드라인은 해외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신 유사시 외화를 한도만큼 빌릴 수 있는 권리다.

우리은행은 스페인 2대 은행인 BBVA와 다음달께 3억달러 규모의 커미티드라인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연말까지 3억달러 이상의 커미티드라인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1억2000만달러의 커미티드라인을 확보한 수출입은행 역시 이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은행권은 연말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지금과 같은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되면 문제가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대형 은행들이 확보하고 있는 커미티드라인은 최대 20억~30억달러 정도여서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며 "하지만 그리스가 실제로 디폴트를 선언하고 시장 불안이 장기화하면 내년 초부터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은행들은 외화가 고갈될 것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엔화 및 달러 대출을 억제하고 기존 대출금을 일부 회수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 때문에 지난 23일 은행 자금담당 임원을 소집해 중소기업에 대한 외화대출을 줄이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일부 은행은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던 계획에까지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전북은행은 지난 22일 유상증자 청약을 받으려고 했지만 주가가 급락하면서 연말로 미뤘다.

조재길/이상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