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모금전문가라는 박원순 씨의 큰소리
"애인에게 맥북에어 노트북을 선물받은 후 한 달 만에 헤어졌다면 돌려줘야 하나요?" "고민할 필요 없어요.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면 됩니다. " 최근 서울시립대 청춘토크파티에서 진행자와 초대손님으로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예비 후보가 주고 받았다는 대화다. 간단한 답에 청중들은 웃고 박수쳤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지나치면 그만인 일에 멈칫한 건 '이별의 원인이 받은 쪽에 있다면' 싶었기 때문이다. 준 쪽에선 자존심상 차마 돌려달라는 말을 못 했을 수도 있고,물건으로나마 자신의 마음을 기억해주길 바랐을 수도 있다. '일단 돌려준 다음 끝까지 받지 않겠다고 하면 기증하는 것도 괜찮다'고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고리타분하다는 평에 아름다운 가게 기증품도 하나 줄었을지 모르지만 젊은 대학생들에게 무슨 일에서건 상대의 입장도 한번쯤 생각하는 태도를 갖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배려란 남이 내게 해줬으면 싶은 것을 내가 남에게 먼저 행하는 것'이라 규정한 적도 있으니.

그는 또 시민단체 상임이사 시절 대기업에서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자신은 모금전문가라며 '나눔활동을 위해 대기업 후원을 받는 게 뭐가 나쁜가'라고 반박했다. 대기업 사외이사로 5년여간 3억5700만원을 받은 데 대해서도 전부 기부했다며 "기업의 세계,국제적 경쟁력 등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기업이 외부의 어떤 압력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답했다.

드러난 말로만 보면 남에게 뭔가 받는 데 대해 언제고 갚아야 할 빚이란 느낌이 별로 없거나,선의라는 이름의 공짜에 익숙해 '누가 왜 주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거나,줄 만하니까 줬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같은 자리에서 자신은 '사회에 무한책임을 지는 공적 지식인'이라는 말도 했다.

1997년 대선 후보 검증 TV토론회 참석 당시 후보자들의 세금계산서를 들고 나와 소득과 소득원에 대해 질문한 그다. 알려진 대로 월세 250만원에 61평 아파트 관리비 내고,생활비와 용돈 쓰고,딸 유학비까지 보내자면 월 1000만원 이상 족히 들 것이다. 봉급쟁이 실수령액이 그 정도 되자면 세율이 30%를 넘을 테니 세금이 만만치 않아진다. 과연 그동안 그가 낸 세금은 얼마나 될까. 자기 소득은 죄다 기부하고 부인 수입으로 살아 얼마 안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뭔가를 줄 땐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당장의 대가를 바라진 않더라도 기억해달라고,잊지 말라고,호감을 가져달라고 준다. 일단 연을 맺으면 언제 어떤 식으로든 거들어줄 거라고 믿는 것이다. '대가성 없는 떡값'이란 말에 수긍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그런 건 법이 아니라 선험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선의의 공짜가 있다고 믿는 이들이 넘쳐난다. 선거 경쟁자였던 이에게 준 2억원을 '선의'였다고 주장하는 교육감도 있고,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와 만났지만 해준 일은 없다는 전 홍보수석도 있다. 대놓고 어떻게 해주라고 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와 가깝다고 암시만 해도 알아서 한다는 마당이다.

정권 실세에 주는 돈이나 시민운동가 혹은 시민단체에 주는 돈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봐달라고 주는 돈이나,두렵거나 귀찮아서 주는 돈의 본질 또한 이른바 '보험'이란 측면에서 보면 마찬가지다.

조선조 선비 김시습은 좌우명 '북명(北銘)'에 이렇게 적었다. '물 한 쪽박 찬밥 한 술이라도 거저 먹지 말며/ 한 그릇을 먹었으면 한 사람의 몫을 하되/ 모름지기 의로움의 뜻을 알라./ …염치는 개운하고 흐뭇하더라./ 세태의 흐름은 사특한 것.칭찬에 기뻐하지 말며 욕을 하더라도 성내지 말라.'

이런 말도 남겼다. '일은 도(道),땀은 의(義)다. 일을 몰라서 백성을 모르는 자는 비록 재간이 뛰어나 열 번 등과하고 열번 출각(出脚,물러났던 벼슬길에 다시 나아감)하고 열번 승자(陞資,정3품 이상 품계에 오름)를 하더라도 하는 족족 무논에 며루가 되고 산전에 노린재가 되기 십상이다. ' 땀의 대가가 아닌 돈을 당연시하는 이들의 귀엔 과연 어떻게 들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