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상을 휩쓸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베이스 박종민 씨(24)가 남자 성악 부문 1위,소프라노 서선영 씨(27)가 여자 성악 1위를 차지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꽃'으로 불리는 피아노 부문에서는 손열음 씨(25)가 2위,조성진 군(17)이 3위에 올랐으며,바이올린 부문에는 이지혜 씨(25)가 3위를 수상했다.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한 나라의 연주자 5명이 시상대에 오른 일은 이례적이다.

이 같은 쾌거의 밑바탕에는 기업의 예술활동 지원 프로그램인 '메세나(Mecenat)'가 있었다. 수상자 5명 중 4명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1998년부터 10년 이상 발굴 · 지원해온 음악영재 출신이다. 기업 메세나 활동이 '클래식 한류'의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사진작가 김아타,설치작가 이형구 이불 김수자 등 우리나라 미술계를 이끄는 작가들 대부분은 삼성문화재단이 현대미술 트렌드를 소개해온 '아트 스펙트럼' 전시회와 플라토(옛 로댕갤러리) 초대전을 통해 데뷔하고 성장했다. 예술계는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기업 메세나 활동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문화예술 지원 다시 증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지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기업의 메세나 지원금도 증가 추세를 보이는 등 문화예술 지원의 손길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회장 박영주)가 최근 발표한 '2010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에 따르면 기업의 문화예술 분야 총 지원금은 1735억100만원으로 전년의 1576억9000만원보다 10%가량 증가했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액이 3년 만에 늘어난 것이다.

지원 기업 수도 606개사로 전년의 420개사보다 44% 늘었다. 다만 지원 건수는 1940건으로 전년의 2706건보다 28% 감소했다. 메세나협의회는 "기업들이 건수는 줄이되 건당 지원 금액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문화예술 지원 전략을 선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분야별로는 미술 · 전시 분야가 406억54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문화예술 관련시설 운영지원비 398억9500만원,지역민 대상 문화예술교육 346억3400만원 등의 순이었다.

기업 출연 문화재단의 지원액은 601억3100만원으로 총 지원금의 35%를 차지했다. 문화재단별 지원은 리움 등 미술관을 운영해온 삼성문화재단이 가장 많았고 LG연암문화재단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CJ문화재단,대산문화재단이 뒤를 이었다. 문화재단을 제외한 기업의 지원은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에 이바지한 홈플러스의 지원액이 가장 많았고,현대중공업과 포스코,한화,KT가 뒤를 이었다.

◆젊은 예술가 발굴 후원

기업들은 잠재력 있는 미래의 예술인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삼성미술관 리움,호암미술관,로댕갤러리,삼성어린이박물관 등을 운영하며 예술활동을 담당하는 젊은 예술가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맴피스트(MAMPIST) 제도다. 맴피스트는 음악(Music) 미술(Art) 영화(Movie) 연극(Play)의 영문 첫자와 사람을 뜻하는 '-IST'를 조합해 만든 말.재능있는 젊은 문화예술인을 선발해 2년 과정의 해외 교육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금호아시아나재단이 진행하는 '금호 콘서트'는 '클래식 등용문'으로 통한다. 이 재단은 매년 5월과 11월 '금호 영재' '금호 영아티스트' '금호 영체임버' 등 세 개의 콘서트 오디션을 통해 영재들을 발굴한다. 클래식 음악계의 권위있는 심사위원이 나서며 이를 통해 선발된 연주자들은 '금호영재콘서트 시리즈' '금호영아티스트콘서트 시리즈' '금호영체임버콘서트시리즈'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

지금까지 발굴한 음악 영재만 1000명이 넘는다. 1993년부터는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구입해 장래가 촉망되는 연주자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하는 '악기은행'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CJ문화재단도 신인 발굴로 유명하다. CJ아지트 등 실험적인 창작 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연극 영화 작가 등 대중문화 분야의 다양한 창작자들을 발굴,지원하고 있다.

◆문화 · 예술 꿈나무 육성에도 앞장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개발하고 키워주기 위한 문화예술 교육에도 기업들은 적극적이다.

LG그룹의 메세나 활동 중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LG 사랑의 음악학교'다. 2009년부터 매년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4개 부문에서 음악영재들을 선발해 실내악 전문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LG연암문화재단은 2008년부터 예술가들과 함께 보육원,교화시설의 청소년들을 찾아가 음악 연극 무용 등을 교육하는 'LG아트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1억원을 들여 문화 소외지역 중 · 고등학생에게 연극 공연을 보여주는 '스쿨 콘서트'도 5년째 열고 있다.

SK는 2008년부터 행복나눔재단과 함께 재능과 열정은 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춤 노래 연기 등을 가르치는 'SK해피뮤지컬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와 음악감독 등이 매주 2~3회씩 강사로 나서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연기 음악 무용 수업을 진행한다.

기업들은 소외된 이웃과 일반인들에게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사업도 펼치고 있다.

한화그룹은 전국 45개 사회복지관 및 아동복지시설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인 '한화 예술더하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포스코는 포항의 효자아트홀과 광양의 백운아트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고 연간 40여건이 넘는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소외계층을 위해 다양한 콘서트와 전시회 등을 열어 이들이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