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의 발전은 시장에 도사리는 갖가지 위험에 대한 인식과 통제 수준의 변화를 통해 이뤄져왔다.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초기에는 위험을 단순 중개하는 위탁매매(brokerage) 업무가 주류를 이룬다. 이후 실물경제와 부(富)의 성장으로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지면 고객자산을 운용하는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로 중심이 이동한다. 자산관리 영업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시스템이 갖춰지면 다음 단계로 직접 고위험 · 고수익 상품을 취급하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 흐름은 전형적인 증권회사의 발전 경로다. 우리가 잘 아는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JP모건 등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도 같은 단계를 밟으며 성장했다.

한국의 증권산업은 위탁매매와 자산관리 단계를 거쳐 진정한 의미의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기 위한 출발선에 와 있다. 국내 대부분의 증권사는 2006년까지만 해도 60~70%의 수익을 위탁매매를 통해 창출했다. 하지만 1998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이들을 자산관리자로 변모시켰다. 수익증권(mutual fund),랩(wrap account),파생결합증권(ELS · DLS) 등의 선풍적인 인기는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처럼 자산관리를 주수익원으로 하는 강력한 증권사를 등장시켰다. 2006년 말 234조원에 불과했던 수익증권 전체 설정잔액은 2년 만에 360조원으로 126조원(53.8%) 증가했고,증권사의 수익 규모도 함께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빠른 성장세는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혔다. 위탁매매와 자산관리는 기본적으로 개인고객을 상대로 한 영업이기 때문에 고위험 · 고수익 상품을 취급하기 어려웠다. 증권사 간 차별화도 쉽지 않았다. 결국 갈수록 경쟁은 심해지고 수익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증권사의 실적과 주가 정체의 배경도 여기에 있다. 2010년 상장기업이 자기자본이익률(ROE) 12%를 달성하는 동안 증권사는 8% 수준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성장 한계에 부딪힌 증권사들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수익모델 찾기에 분주하다. 이런 움직임에 불을 붙인 것이 지난 7월 입법 예고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다.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 등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앞다퉈 유상증자에 나서며 프라임브로커리지,기업금융(M&A bridge loan) 등 투자은행 고유의 영업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장기적으로 시장의 구조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국내에서 대형 투자은행도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증권산업이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 있는 셈이다.

투자자들은 증권주 투자에 앞서 이런 변화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큰 그림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 실패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더욱 주의해야 할 점은 증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증권산업이 중요한 변곡점을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불투명한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 현재의 실속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현재의 사업 모델을 갖추기까지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렸다. 아무리 압축성장에 능한 한국이라 하더라도 향후 인적자원,네트워크,시스템 등 갖춰야 할 것이 많다.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기까지는 빨라야 수 년,길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다면 여전히 위탁매매와 자산관리부문의 수익성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종합주가지수가 연일 하락하고 있지만,증권사의 기본 수익원인 위탁매매와 자산관리부문의 수익성은 우려만큼 나쁘지 않다. 오히려 최근 변동성 확대로 인해 거래대금이 증가하면서 위탁매매수익이 증가한 증권사도 있다. 자산관리 부문도 시장에서 우려하는 만큼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증권주의 주가가 유난히 부진한 것은 금융위기 때 드러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우려와 과도한 채권 보유에 따른 평가손실 가능성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금융위기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보유 PF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로 절대 금액을 크게 줄여놨다. 채권의 경우도 대부분 증권사가 듀레이션(가중평균 만기)을 충분히 낮춘 상황이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따른 이익변화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증권주의 하락이 다소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이유다.

증권사의 수익성이 둔화될 수는 있지만 적자 수준까지 내려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증권사 투자에 신중해야 하지만 과도한 우려는 불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