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실제 예수와 얼마나 닮았을까.

예배 대상으로서의 예수상이 처음으로 정립된 것은 로마제국이 정치,경제적으로 급격히 붕괴하던 3세기였다. 난세에는 언제나 새로운 종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마련인데 로마제국 말기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신앙 집단이 저마다 내세에서의 영생과 부활을 기치로 내걸며 민심을 얻으려 했다. 기독교도 그중 하나였다.

이런 가운데 예수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는 조직적인 포교와 지도층의 검소함에 힘입어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몸집이 커진 기독교는 체계적인 교리 정립과 함께 성상을 제정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문제는 예수의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200여년 전에 생존한 데다 외모에 대한 정보도 몇몇 단편적인 것만 전해 내려올 뿐이어서 결국은 화가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 상상력은 교회 지도부의 입장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발휘돼야만 했다. 난세에는 상처받은 민초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또 그들이 오랫동안 숭배해온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대할 때처럼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야 민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초기의 지도부는 제우스나 아폴론 같은 신화 속의 존재를 빌려 예수의 이미지를 정립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예수는 때로는 마차를 탄 아폴론으로,때로는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된 헤라클레스로 묘사되고,두광을 두른 어린 디오니소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희생양을 어깨에 멘 그리스의 미소년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어느 경우든 자애로운 구원자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예수의 도상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일개 민간신앙에서 제국의 국가 종교가 된 기독교는 사교 집단과 구별되는 권위적 외양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민초의 등을 두드려주던 '친절한' 예수는 이제 전지전능한 우주의 지배자나 세속의 지배자인 황제의 모습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예수는 이제 구원자가 아닌 천상의 주재자로서 세상을 심판하러 온 절대자로 역할이 바뀌었다. 특히 종교가 정치적 통합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황제들은 천상의 지배자인 예수의 도상에 지상의 지배자인 황제의 개념을 투사했다. 예수는 황제의 옥좌에 앉아 군림하고 남루한 옷차림의 제자들은 로마 원로원 의원의 토가를 걸친 귀족으로 묘사됐다.

6세기에 제작된 라벤나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면 예수가 군복을 입고 뱀과 사자를 짓밟고 있는 전사 황제의 모습으로 묘사돼 있어 자비심은 고사하고 공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더 이상 온화한 표정을 짓지 않으며 다가오는 중세 천년의 세월 동안 굳은 표정으로 일관한다. 예수가 본래의 자애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은 르네상스 시대 신앙심이 이완되면서 신도들이 교회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였다. 어린 양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서슬 퍼런 심판자의 이미지는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분명한 것은 시대의 절실한 요구가 앞으로도 절대자의 표정과 역할을 결정하리라는 점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