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첨단 모바일 기기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날개돋친 듯 팔릴 때 조용히 미소짓는 기업이 있다. 이들 모바일 기기 화면에 쓰이는 강화유리를 공급하는 세계적인 특수유리 제조회사인 미국 코닝이 주인공이다.

코닝이 개발한 고릴라 글라스(Gorilla Glass)는 얇은 두께에도 스크래치가 생기지 않고 쉽게 깨지지 않는 내구성과 더불어 화면 터치감까지 좋아 스마트 기기용 유리 시장을 휩쓸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모토로라 HTC 노키아 에이서를 포함한 30여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425개 이상의 제품에 고릴라 글라스를 쓰고 있다. 일본 소니조차 브라비아(Bravia) TV 화면 유리에 자국의 아사히글라스 제품 대신 코닝의 고릴라 글라스를 채택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올초 코닝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드래곤트레일(Dragontrail)이라는 강화유리 신제품을 내놨지만,시장의 관심은 여전히 고릴라 글라스에 쏠려있다. 고릴라 글라스 탓에 액정보호필름 시장이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기회를 잡으면 놓치지 않는 기업문화

글로벌 휴대폰 메이커들은 2007년 무렵 액정 화면이 너무 쉽게 깨진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가볍지만 내구성이 훨씬 강한 새로운 유리 재질을 찾아야 했다.

그 때 코닝 특수물질사업부 소속의 한 팀은 휴대폰 메이커들의 고민에 새로운 사업기회가 있을 것이라는데 착안했다. 1851년 설립된 코닝의 축적된 기술력을 믿고 곧바로 회사 자료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962년 자동차용 유리로 개발했다가 포기한 강화유리 '켐코'(Chemcor)를 찾아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당장 휴대폰용 유리로 적합할지 테스트가 필요했다. 30만달러에 육박하는 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고,더구나 테스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 화면에 플라스틱이 아니라 유리기판을 사용한다는 데 대해서도 설득이 힘들었다. 사업부의 고위 임원들은 한결같이 난색을 표했다. 그렇지만 가능성을 직감한 실무 팀장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했고 결국 테스트를 성사시켰다.

고릴라 글라스는 이후 수년간의 제품 최적화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고 결국 대박을 터뜨렸다. 35%를 웃도는 영업이익률을 자랑하는 코닝은 올해 고릴라 글라스에서만 10억달러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의 성장세를 고려할 때 2015년에는 30억달러 이상의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경쟁사인 아사히글라스는 신형 강화유리 드레곤트레일의 내년 매출 목표를 4억달러 수준으로 잡고 있다.

◆CEO 지시없이도 협조하는 기업문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레베카 핸더슨 교수는 고릴라 글라스 대박의 배경을 기회를 포착하는 본능과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해 제품화하는 혁신 문화에서 찾았다. 성공적인 제품 및 서비스 혁신을 지원하는,이른바 '스테이지-게이트(stage-gate)' 프로세스가 아이디어 발의부터 제품 개발 및 출시까지 전 과정이 효율적으로 관리됐다는 지적이다.

1차 테스트를 통과한 고릴라 글라스가 잠재 수요자들로부터 호평받자 이번엔 담당 사업부 임원들이 부서 간 업무 칸막이를 벗어던지고 회사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본격적인 연구개발과 제품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100명 넘는 연구진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고 시험생산을 위한 부지 확보와 시설투자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코닝이 다른 회사와 다른 점은 부서 간 칸막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핸더슨 교수는 전했다. 그는 "다른 많은 회사들은 최고경영자가 다른 사업부에 협조를 지시하는 방식으로 한두 차례 협조를 얻는 데 그치고 사업도 지지부진해지기 일쑤지만 코닝은 달랐다"고 했다. 코닝에선 CEO의 간섭 없이도 고릴라 글라스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의미다.

초기 마케팅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직접 뛰어들었다. 제품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엔지니어들이 수요 기업을 만나 제품의 기술적 특성을 소개했고 이는 시장을 빠르게 확대하는 배경이 됐다.

코닝의 또 다른 강점은 조직 내 여유와 긴장의 완벽한 조화다. 핸더슨 교수는 "여유는 아이디어를 낳고 긴장은 의사결정을 낳는다"며 "둘의 조화가 이뤄져야 성공스토리를 만들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고릴라 글라스는 이온교환 방식으로 제조된다. 순수한 상태의 유리를 섭씨 400도의 용융소금이 담긴 용기에 집어넣어면 유리 속의 나트륨 이온이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 칼륨 이온이 들어가는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코닝 측은 유리 표면에 붙어 있는 테니스공을 농구공으로 대체한 뒤 냉각시켜 강한 밀집력을 확보할 수 있고 웬만해서는 흠집이 나지 않는 내구성을 갖게 된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