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유한킴벌리 본사 5층.27일 오전 9시가 되자 출근길에 오른 임직원들이 사무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널찍한 테이블.부서별,직급별 고정 좌석은 없었다. 대학 도서관처럼 먼저 자리잡는 사람이 임자다. 손승우 홍보팀장은 이날 고대연 가족친화경영팀 대리,박나은 커뮤니케이션팀 사원과 같은 테이블에서 일했다. 김영일 홍보팀 과장은 직속 상사인 손 팀장 옆자리가 아닌 책상마다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 형태의 '집중업무실'을 '오늘의 일터'로 찜했다.

4조2교대,시차 출 · 퇴근제(출근 시간을 오전 7~10시로 탄력 운영) 등 '근무 시스템 혁신 전도사'로 꼽히는 유한킴벌리가 새로운 실험에 들어갔다. 지난달부터 고정 좌석을 없애고 각 직원들이 원하는 근무 장소를 고를 수 있는 '오픈 좌석제'를 실시한 것.대형 제조업체가 전체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오픈 좌석제를 실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회사는 또 경기도 죽전 이노베이션센터와 군포 공장에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스마트워크 센터'를 구축,분당과 수원 등지에 거주하는 직원들이 본사 대신 이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본사에서 만난 최규복 유한킴벌리 사장(55 · 사진)은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고,원하는 사무환경도 제각각이란 점에 착안했다"며 "이제 유한킴벌리 직원들은 그날의 기분과 처리해야 할 업무의 성격에 따라 대학 도서관,독서실,스타벅스(그린웨이 라운지를 말함) 중 하나를 골라 자리잡으면 된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오픈 좌석제를 실시한 데 대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한 사람이 혼자 골똘히 생각할 때보다 여러 사람이 협업할 때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러 부서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한 테이블에서 일하다보면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동료의 고민거리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해법도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범 실시해보니 부서 간 · 상하 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친밀도가 높아지면서 업무 협조 기간이 단축됐을 뿐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도 더 많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오픈 좌석제의 장점은 재무적인 '숫자'에서도 나타난다. 임대 면적이 6.5개층에서 5개층으로 줄어 연간 10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최 사장은 "외근 등을 이유로 평소 자리를 지키는 직원이 60%에 불과하다는 점에 착안해 본사 직원 500여명 중 400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만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스마트워크 시스템 도입을 계기로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일단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시니어 케어'(노인용 위생 · 생활용품) 사업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라며 "이를 위해 최근 충주공장에 200억원을 투입해 '어른용 기저귀' 생산라인 구축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