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선 한은의 물가관리 실패 여부가 최대 쟁점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은 한은의 물가 관리 능력을 문제 삼았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해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5번 올렸다"고 반박했지만 의원들의 잇따른 문제 제기에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교롭게 한은이 이날 발표한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3%로 2008년 11월(4.3%) 이후 2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은 금리인상 실기"

한나라당 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이한구 의원은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3%로 한은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며 "급격한 물가 상승에 대한 1차 책임은 한은이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김 총재를 몰아붙였다. 같은 당 강길부 의원도 "한은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증대와 경기회복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에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며 금리인상 실기론을 제기했다.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은 "지역구에 가보면 서민들이 물가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지적했다.

야당도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곤 민주당 의원은 "한은이 물가 안정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냐"고 따졌다. 같은 당 오제세 의원은 "전 직원의 25%가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데도 물가 안정을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서민 생활에 직결된 물가 문제를 이슈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플레 기대심리 고공행진

여야 "韓銀, 물가관리 실패" 한목소리
한은에 따르면 최근 전국 56개 도시 22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4.3%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이후 3개월 연속 4%대를 넘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계속 높아지는 것은 올 들어 8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평균 4.5% 오른 데다 최근 원 · 달러 환율 급등으로 수입물가가 불안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은이 경기회복기에 제때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해 '물가 잡기'에 실패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커지면 고물가가 고착화될 우려가 있다. 임금상승 요구가 커지고 이것이 다시 물가를 밀어올리는 '물가-임금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관리하는 게 중앙은행의 책무"라며 "물가 관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한 · 미 통화 스와프 논란

이날 국감에선 한 · 미 통화스와프를 둘러싸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 총재가 '설전'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박 전 대표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금융위기가 닥치면 외화차입의 대규모 상환 요구와 외국인 증권자금의 유출로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거시경제가 불안해진다"며 미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통화스와프 확대를 강조했다.

김 총재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변하자 박 전 대표는 "몸이 건강할 때 보험에 드는 것이 쉬운가,아플 때 보험에 드는 것이 쉬운가"라고 재차 압박했다. 김 총재는 "취지는 알겠지만 통화스와프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라며 맞섰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