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석 서흥알이에프 대표(58)는 최근 고민이 많다. 중국 기업의 기세와 글로벌 경기침체가 30년 동안 오로지 섬유제조만 고집해 온 그에게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경쟁력있는 독자 기술도 필요하고 탄탄한 판매망도 확보해하는데 시간도 없고 손도 딸린다. 그래서 올초 외아들 최민웅 주임(30)을 조용히 불렀다.

"젊은 사람이 뭔가 도전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뭔가 하겠다면 도와주겠다. 그러나 그 일을 계속할 지 아닐 지를 빨리 결정해라.반 년을 주겠다. "

인하대 국제통상부를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게임 개발로 날을 세우고 있던 최 주임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아버지 회사에 들어온 게 지난 7월.아직 새파란 신입사원이다. 근무부서는 해외영업부다.

그래도 꿈은 알차다. "아버지가 지난 30년 동안 이 시장에서 일궈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서흥알이에프를 세계적인 섬유업체로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최 대표가 1980년 서흥양행이라는 업체로 시작한 서흥알이에프는 국내외에서 반사원단(일명 형광섬유) 제조 · 판매업체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반사원단은 섬유표면에 직경 70마이크론(1마이크론은 1000분의1㎜)의 초미세 유리구슬을 판판하게 깔아 빛을 들어온 방향으로 반사(재귀반사)시키는 특수 섬유다. 소방복이나 환경미화복에 붙은 형광섬유가 자체발광하는 이치다. 이외에도 이 회사 제품은 각종 반사테이프나 반사필름,안전조끼,애견용 안전용품까지 광범위하게 쓰인다. 해외에서도 이 회사 제품은 원래 특허권을 갖고 있었던 미국 3M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최 대표가 처음부터 반사섬유를 만든 것은 아니다. 서흥양행 시절엔 각종 의류에 부착하는 액세서리를 만들어 의류업계에 납품했다. 필라나 나이키 등의 의류에 붙이는 마크 대부분을 최 대표가 만들었다. 반사원단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환경미화원등에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반사원단이 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웨어에 패션 아이템으로 부착되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미국 3M에서 반사원단을 들여다 완제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그리고 5년후 이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반응은 선풍적이었다. 3M에 비해 가격은 절반인데 품질도 뒤지지 않았다. 3M 등 다국적 기업이 독점하던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유럽시장에 내놓자 날개돋힌 듯 팔리기 시작했다. 2001년 50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2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최 대표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별 어려움없이 성장했다고 보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세계시장을 뚫을 수 있는 판매망이 없으면 앞으로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최 대표는 최근 쓰레기봉투 등에 사용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썩는 수지)제조하는 지오솔테크도 설립했다. 공장은 강원도 원주에 오는 12월 착공예정이다. 그 후의 일은 아직 백지상태이다. 아들 최 주임과 함께 써나가야 할 부분인 셈이다.

최 대표는 "아들이 자진해서 가업을 잇겠다고 했고 의욕도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 주임은 재학시절에도 자진해서 부산 경산공장등에서 6개월 근무하면서 현장을 익혔다. "앞으로 솔선수범하고 직원들과 함께하려는 리더십을 배웠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최 주임은 "아버지께서 일을 배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열심히 배워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부지게 대답했다.

◆ "소방관 · 교통경찰 '형광 근무복' 우리 제품입니다"

최상석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는 크게 3개다. 국내 시장을 담당하는 서흥알이에프가 있고,수출은 지오라이트(GeoLite)에서 담당한다. 베트남에 가방을 만드는 현지 합작회사가 한 곳이 더 있다.

서흥알이에프는 국내 형광섬유 원단시장에서는 70~80%를 차지한다. 환경미화원과 소방관,교통경찰관의 근무복에 붙은 형광섬유는 대부분 이 회사가 공급한다고 보면 된다. 올해 80억원 정도 매출이 예상된다.

지오라이트에서는 전 세계 30여개국에 형광섬유 원단과 관련 제품을 연간 100억원어치 이상 수출한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지식경제부로부터 1000만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 초반부터 해외시장을 공략한 덕이다. 유럽시장에서는 형광섬유 원 특허권자인 3M을 제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품은 크게 세 곳에서 생산된다. 부산 양산공장에서는 형광섬유 원단,충북 청주공장에서는 우천이나 습기찬 날씨에도 빛 반사를 할 수 있도록 마이크로프리즘 타입의 필름원단,경기 포천 공장에서는 운동복에 사용되는 백업 넘버용 형광섬유를 생산한다. 현재 전체 종업원은 베트남 공장을 포함해 총 250명 정도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