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차세대 아이폰(아이폰5) 공개 이벤트 초청장을 주요 언론에 보낸 지난 27일.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만난 이재용 사장(사진)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삼성전자의 최고운영책임자(COO)다. 애플을 포함한 해외 거래처들과의 협력 · 경쟁관계를 총괄한다. 이 가운데 애플은 삼성전자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가는 고객인 동시에 휴대폰 · 태블릿PC 분야의 최대 라이벌이다. 때문에 애플과의 소송전은 이 사장이 언급하기에 매우 껄끄러운 문제다.

그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삼성전자 COO로서 특허소송전에서 애플에 강력 대응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이 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10월4일이나 5일에 보세요.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 애플에 대한 모종의 '반격 카드'를 준비 중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답변이었다. 이 사장을 만나기 6시간 전인 오전 11시.미국 · 일본 출장을 떠나는 이건희 회장을 배웅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들른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지금으로서는 애플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성,애플과 전면전 왜 나서나

최대 고객이지만 '度 넘어'…"두고 볼 수 없다" 강경 대응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스마트폰 · 태블릿PC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을 처음 제기한 것은 지난 4월15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두 회사의 특허분쟁이 이렇게 확전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최대 고객이면서 라이벌'인 애플과 삼성의 특수관계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애플은 미국 일본 독일 등 9개국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삼성도 각국 법원에 맞소송을 제기하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에 아이폰4,아이패드에 대한 판매 · 수입금지 신청을 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삼성 내부에서는 신중론과 강경론이 팽팽히 맞섰다. 신중론은 주로 반도체사업부 쪽에서 나왔다. 애플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등 부품 부문의 최대 고객이다.

무선사업부는 강경론을 폈다. 애플의 공세가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였다. 무엇보다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준비한 갤럭시탭 10.1을 내놓는 시점에 맞춰 애플이 독일,네덜란드,호주에서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면서 일시적이나마 물건을 못파는 처지에 직면했다.

◆가처분 대신 ITC 제소

삼성전자는 강경론을 택했다. 이와 관련,삼성 내부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반격 카드를 고민해왔다. 우선 아이폰5 출시에 맞춰 국내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는 전략이다. 애플이 갤럭시탭 10.1 출시 시점에 독일 법원 등에 가처분 소송을 낸 것과 똑같이 대응하자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아이폰5 판매금지 가처분을 낼지를 검토했지만 본안 소송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처분 신청을 낼 경우 애플이 통신특허를 침해했다는 점을 법원에 제시해야 하는데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서다. 가처분 소송에 대한 국내 법원의 판결 성향도 고려했다. 애플의 가처분 소송을 들어준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과 달리 국내 법원은 가처분 소송에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택한 게 ITC 제소다. ITC는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 분쟁에서 각국 법원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 ITC가 미국에서 등록한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몇 년이 걸리는 특허소송과 달리 1년6개월 정도면 판결이 내려진다.

이태명/조귀동/이고운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