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는 삼성전자에 공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청천벽력이었다. 지난 1월 백운필 나노캠텍 사장은 전화너머의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이런 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노캠텍은 삼성전자의 2차 벤더(공급업체)로 1차 협력사에 정전기 차단 필름인 ‘글라솜(GLASSOM)’을 2009년부터 공급해왔다. LCD 셀글래스를 이송할 때 사이사이에 끼우는 도전성 간지다. 삼성전자에서만 월 10억 가량, 매년 120억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 품목이었다.

글라솜은 엠보싱 구조로 충격을 방지하는 기능이 우수하고, 반영구적인 내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만큼 백 사장도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관련된 특허만도 3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글라솜은 나노캠텍에게 '삼성전자'라는 기회를 준 품목이기도 했다. 기존에는 LG디스플레이나 LG전자 등이 주요 고객사였지만, 글라솜으로 삼성전자에도 납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차 벤더지만 까다롭다는 새로운 공급처를 얻게 된 것만으로도 뿌듯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날아든 전화 한 통에 납품을 시작한 지 1년6개월 여만에 공급을 중단하게 됐다. 이유 또한 기가 막혔다. 제품에 하자가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나노캠텍이 공급하는 1차 벤더인 A사가 일본 제품을 수입·공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에 공급을 하게끔 해준 고마운 곳으로만 여겼던 회사였다. 하지만 A사는 하루 아침에 월 10억원의 밥줄을 끊겠다고 나온 셈이었다.

백 사장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주식시장에서 설비를 늘리겠다고 자금을 조달하던 터였기 때문이다. 2010년 실적이 좋았던 나노캠텍은 신사업으로 메탈PCB 사업을 준비하면서 지난해 11월 유무상증자를 실시했다.

나노캠텍의 지난해 매출액은 612억원, 영업이익은 80억원으로 2009년 대비 각각 24.1%, 21.7%씩 증가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도 될 때라고 여기고 발광다이오드(LED) 핵심부품을 찾았다. 메탈PCB는 LED에 사용하는 전자회로기판(PCB)이다. LED는 고열이 발생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PCB를 사용할 수 없고, 알루미늄과 구리를 합친 메탈로 만들어진 PCB를 사용해야 한다.

그야말로 LED에 메탈PCB는 없어서 안될 핵심 부품이었다. 이를 위해 유상증자로 70억원을 끌어모은 주식은 이미 상장된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물량 압박으로 떨어질 주식에 악재가 될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후였다. 유무상 증자로 늘어난 주식이 상장되고 나노캠텍의 이 같은 공급중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은 공급중단의 이유를 자세히 듣지도 않았다. '기술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소연했지만 시장에서 나노캠텍은 증자에 매출처도 없어진 이른바 '나쁜 회사'가 되고 있었다. 연초 6000원대였던 주가는 6개월여 동안 반토막이 났다. IT 불황까지 겹치면서 하락폭을 키웠다. 그렇게 지옥같은 반 년을 보내고 백 사장은 삼성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차 벤더를 선정하기 위한 테스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준비가 되는대로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백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샘플을 들고 나섰다. 6월27일. 나노캠텍은 이날 삼성전자 협력업체로 선정돼 주력 제품인 정전기 차단필름 그라솜 공급을 개시했다. 주가도 화답해 이날 상한가를 기록했다. 기술력으로 공급재개를 시작하면서 나노캠텍의 위상도 달라졌다. 1차 벤더로 승격해 삼성전자에 직접 공급하는 업체가 됐다. 기술은 결코 속이는 법이 없다는 백 사장의 믿음은 이렇게 현실이 됐다. 나노캠텍이 보유한 현재 국내 특허는 80개, 해외특허는 3개다.

그는 "나노캐텍은 올해 세계 경기침체, LCD 산업하향, 그리고 원자재 급등 등으로 창업 이래 가장 힘든 한해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임직원들에게 뒤를 돌아보고 '처음처럼'이라는 창업 정신으로 다시한번 도약 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다른 신제품도 공급할 기회를 얻었다. 나노캠텍은 LCD 모듈을 이송할 때 포장용으로 사용되는 친환경 실링백(제품명 에코백)을 4분기부터 삼성전자에 공급할 예정이다. 월 4억~5억원 가량이 매출이 기대되는 제품이다.

설비 증설이 완료된 메탈PBC의 매출도 기대되는 시점이다. 나노캠텍은 내년에 메탈PCB와 에코백에서 각각 120억원, 50억원의 새로운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2년 82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방침이다. 나노캠텍의 지난 30일 주가는 전날대비 5원(0.15%) 상승한 3300원을 기록해 나흘연속 상승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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