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한복판 '트럭 맛집' 군침 꼴깍…도도한 뉴요커 줄세우는 '거리의 셰프'
맨해튼 한복판 '트럭 맛집' 군침 꼴깍…도도한 뉴요커 줄세우는 '거리의 셰프'
뉴욕 맨해튼의 금융회사 밀집지역인 메디슨 애비뉴와 48번가. 이곳에선 아침 9시께부터 갈비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나기 시작한다. 코리아타운도 아니고 고층건물만 가득한 거리에서 고기냄새를 풍기며 직장인들을 유혹하는 건 다름 아닌 '푸드트럭(food truck)'.30일 아침에도 '밥앤드조(Bob & Jo)''김치타코(Kimchi Taco)' 등의 로고가 붙은 트럭들이 연기를 뿜고 있었다. 오전 내내 풍긴 냄새의 효과일까. 11시30분께 직장인들이 트럭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갈비나 불고기,닭갈비 혹은 고추장삼겹살 등을 구워 찰기없는 쌀밥이나 바게뜨에 얹어주는 간단한 요리지만 점심시간 내내 사람들로 북적였다. '밥앤드조' 근처에는 오스트리아 전통요리 슈니첼(송아지고기 튀김)을 파는 '슈니첼앤드팅'이란 트럭도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세계적인 셰프(요리사)들의 각축장 뉴욕을 무명의 푸드트럭들이 점령하고 있다.

"미드타운(맨해튼 중심가)에서 10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이 정도 품질의 음식을 먹기는 거의 불가능하죠." 블랙록자산운용의 폴 그린버그 매니징디렉터는 "요즘 이 지역에 늘어나는 푸드트럭을 순회하는 게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됐다"고 말했다.

◆뉴욕 거리 음식의 변천사

1990년대만 해도 뉴욕 거리를 점령했던 음식은 단연 핫도그였다. 주로 관광객을 상대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건 '할랄푸드(Halal food)'다. 할랄푸드란 이슬람 규율에 따라 종교의식을 치른 음식으로 무슬림들은 반드시 이 음식만 먹어야 한다. 1992년 전직 요리사였던 이집트인 모하메드 아불레네인은 주로 파키스탄이나 이집트에서 이민 온 무슬림 택시기사들이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깨닫고 길거리에서 할랄푸드를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음식이 차츰 인기를 얻어 지금은 맨해튼 거리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명물이 됐다.

할랄푸드가 점령했던 거리음식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직장인들의 주머니는 얇아진 반면 최소 20달러에 달하는 식당의 점심식사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틈을 비집고 질 좋은 음식을 트럭에서 파는 속칭 '명품(gourmet) 푸드트럭'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롭고 다양한 것에 늘 목마른 뉴요커들은 푸드트럭 문화를 곧바로 받아들였다. 한국식 바비큐(코릴라,밥앤드조) 중국식 만두(릭쇼 · Rickshaw),오스트리아식 송아지튀김(슈니첼앤드팅),지중해 음식(비스트로 트럭),한식과 멕시코 음식의 결합(김치타코) 등 종류도 수십가지다.

평균 7달러에서 비싸야 15달러 정도에 질좋고 다양한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김치타코 앞에서 만난 프리랜서 사진작가 에린 오브라이언은 "싸고 맛있고 특별한데 푸드트럭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며 웃었다.

◆소자본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된 상황에서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이라는 점도 푸드트럭이 번창하는 이유다. 하지만 길거리 음식이라고 우습게 보고 뛰어들었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일단 거리에서 음식을 팔기 위해선 시 정부에서 부여하는 면허가 있어야 한다. 과거 참전용사들에게 부여됐던 3000여개의 허가증이 지금은 암시장에서 2년에 1만8000~2만달러씩에 거래된다. 시 정부가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음식취급인(food handler) 교육도 받아야 한다.

트럭 가격도 만만치 않다. 조리시설을 갖추는 비용까지 최소 7만달러는 들어간다. 이래저래 초기 비용이 10만달러에 달하는 셈이다. 김치타코의 이윤석 사장(미국명 필립 리)은 "렌트비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용이 적을 것 같지만 시에서 지정한 주차장에만 차를 세워야 하고 전기 · 가스비 등이 보통 식당의 4~5배에 달해 일반 식당에 비해 비용이 크게 적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김치타코의 경우 날씨 좋은 날에는 250명 정도의 손님이 찾는다. 평균 단가를 10달러로 잡으면 하루 매출이 어림잡아 2500달러다. 본격적인 장사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밥앤드조의 경우 1500달러에서 2000달러 정도 번다. 이 중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제외하고 하루 최소 1000달러 정도 남기니 나쁜 장사는 아니다.

◆한식 세계화에도 '한 몫'

맨해튼 한복판 '트럭 맛집' 군침 꼴깍…도도한 뉴요커 줄세우는 '거리의 셰프'
뉴욕의 거리를 점령한 다양한 푸드트럭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끄는 건 단연 한국식 푸드트럭이다. 멕시코 음식인 타코에 불고기와 김치 등을 결합한 김치타코는 뉴욕타임스,공중파 ABC 등 현지언론에 소개되면서 웬만한 뉴요커라면 한번쯤 들어본 명물이 됐다. 한국식 바비큐를 파는 코릴라(Korilla)의 경우 케이블채널 푸드네트워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푸드트럭레이스'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컬럼비아대 졸업생들이 시작한 코릴라는 4대의 트럭을 굴릴 만큼 성장했다.

3개월 전 사업을 시작한 밥앤드조도 미드타운 근처에서 유명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 장진환(미국명 앤디 장) 밥앤드조 사장은"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틀어놓으면 줄을 선 단골들이 춤을 추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대부분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고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같은 자리에 이틀 연속 있으면 손님들이 지겨워해 옮겨다녀야 하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통해 요일별 위치를 미리 알린다. 뉴욕푸드트럭협회에 따르면 10만7000명의 뉴요커들이 푸드트럭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팔로하고 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