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향판(鄕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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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법관들은 수백년 동안 흰색 가발을 쓰고 재판을 했다. 법정의 권위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판사의 성향이나 개성을 드러내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비슷한 사안을 놓고 판사마다 다른 판결을 내리지 않게 하자는 취지다. 2008년부터 민사재판에선 가발을 벗었으나 형사재판에선 아직도 쓴다. 색이 바랠수록 권위를 인정받는 만큼 평생 가발을 바꾸지 않는단다. 여기에 양형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 둬 자의적 판결을 차단하고 있다.
미국에선 판사들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각 지역 변호사단체가 치밀한 검증을 거쳐 책으로 펴낸다. 보완해야 할 점이 있으면 '리뷰 패널'로 불리는 원로 변호사들이 조언도 한다. 일본도 2003년 변호사들이 판사를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모두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조치들이다. 법관의 판단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리 법관은 아직도 제왕적이란 소리를 듣는다. 고압적 태도와 부적절한 언행은 보통이고 심심치않게 편향 판결 시비도 생긴다. 향판(鄕判)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향판은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4개 지방 고등법원 관내에서 근무하는 법관을 뜻한다. 현지 사정을 훤하게 알고 판결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근무하다 보니 토착세력과 관계를 맺으면서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 1997년 이순호 변호사의 의정부법조비리,1999년 이종기 변호사의 대전법조비리,2009년 박연차게이트 등이 모두 향판과 연루된 사건들이다.
광주지법 형사2부가 뇌물수수와 변호사법위반혐의로 기소된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향판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선 판사는 광주 전남 지역에서만 19년간 근무한 전형적 향판이라 법관들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더구나 선 판사가 올해 초 친형과 운전기사,친구를 법정관리인 등으로 앉힌 사실이 드러나자 광주고법과 대법원이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힌 것과도 배치되는 판결이다.
조무제 전 대법관,고종주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처럼 청렴 · 공정했던 향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연 혈연 학연으로 엮이면 처신에 한계를 느끼게 마련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재판에서만은 예외여야 한다. 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맑아진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미국에선 판사들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각 지역 변호사단체가 치밀한 검증을 거쳐 책으로 펴낸다. 보완해야 할 점이 있으면 '리뷰 패널'로 불리는 원로 변호사들이 조언도 한다. 일본도 2003년 변호사들이 판사를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모두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조치들이다. 법관의 판단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리 법관은 아직도 제왕적이란 소리를 듣는다. 고압적 태도와 부적절한 언행은 보통이고 심심치않게 편향 판결 시비도 생긴다. 향판(鄕判)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향판은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4개 지방 고등법원 관내에서 근무하는 법관을 뜻한다. 현지 사정을 훤하게 알고 판결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근무하다 보니 토착세력과 관계를 맺으면서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 1997년 이순호 변호사의 의정부법조비리,1999년 이종기 변호사의 대전법조비리,2009년 박연차게이트 등이 모두 향판과 연루된 사건들이다.
광주지법 형사2부가 뇌물수수와 변호사법위반혐의로 기소된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향판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선 판사는 광주 전남 지역에서만 19년간 근무한 전형적 향판이라 법관들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더구나 선 판사가 올해 초 친형과 운전기사,친구를 법정관리인 등으로 앉힌 사실이 드러나자 광주고법과 대법원이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힌 것과도 배치되는 판결이다.
조무제 전 대법관,고종주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처럼 청렴 · 공정했던 향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연 혈연 학연으로 엮이면 처신에 한계를 느끼게 마련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재판에서만은 예외여야 한다. 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맑아진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