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유흥업소 사장들 사이엔 제일저축은행 대출을 못 받으면 '바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어요. "

고객의 명의를 도용해 140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행장이 구속된 제일저축은행이 유흥업소에 1500억원대 불법대출을 해준 사실이 알려진 30일 오후,서울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하는 강모씨(44)는 "저축은행의 룸살롱 대출은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퇴출 저축은행들의 부실 · 불법대출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유흥업소 업주에게 불법대출을 해준 혐의(업무상 배임)로 제일저축은행 전무 유모씨(52) 등 임직원 8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불법대출을 받은 유흥업소 업주 허모씨(49) 등 93명도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업소 30여곳에서 7억여원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대출브로커 김모씨(56)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유씨 등은 2009년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가짜 담보 서류로 전국 73개 유흥업소 업주 등 94명에게 1546억원을 불법대출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아가씨' 담보대출…혼자 11억원 빚만

제일저축은행이 부실대출을 해준 유흥업소는 '텐프로''풀살롱' 등으로 불리는 고급 유흥업소였다. 유흥업소 업주들은 종업원들이 선불로 돈을 빌려 쓴 뒤 만드는 속칭 '마이낑'서류에 지급 금액을 허위로 작성해 받을 돈이 있는 것처럼 꾸미고 이를 담보로 운영자금 명목의 대출을 받았다.

한 유흥업소에서'마담'으로 일하는 김모씨(33)는 업주에게 11억원의 선불금을 받은 것처럼 서류가 부풀려져 곤란을 당하기도 했다. 사채업자 윤모씨(58 · 여)를 모집책으로 고용해 가정주부,학생에게도 허위 선불금 서류를 작성하게 한 업소도 있었다.

제일저축은행 임직원들은 유흥업소의 운영 현황과 변제 능력 등 대출에 필요한 기본적인 확인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업주의 진술만 믿고 신용조사서를 작성해 대출해줬다. 상당수 업주는 대출받은 돈을 운영자금 대신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창업자금 명목으로 대출받은 39개 업소 중 10곳은 1년도 안 돼 폐업했다.

◆조폭의 사금융화…홀로 200억원 대출

조직폭력배들도 빠지지 않았다. 양은이파,OB파,중앙동파,오거리파 등의 조직원들은 운영 중인 유흥업소 8곳을 이용해 총 224억원을 대출받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풀살롱' 등 유흥업소 4곳을 운영하는 조직폭력배 K씨(50)는 제일저축은행에서 무려 200억원대의 거액을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집계 결과 대출금 1546억원 중 변제된 금액은 원금 325억원에 불과했다. 유흥업소 30개는 이미 폐업했고 25곳은 돈을 갚지 못해 제일저축은행이 상환받지 못한 잔금은 무려 1221억원이다. 경찰은 구속 중인 이용준 행장과 은행 대주주들이 부실대출 사실을 알고 묵인하거나 압력을 행사했는지,부실대출 대가로 금품을 받았는지 등을 계속 조사할 예정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