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판매수수료 인하 작업이 진통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당초 이달부터 3~7%포인트 내리겠다고 발표되었던 사안이다. 하지만 관련업계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는 공정위가 당초 발표와는 달리 판매수수료 몇% 인하보다는 아예 영업이익의 8~10%가량을 중소 납품 및 입점업체를 위해 내놓으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는데 이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공정위는 "구체적으로 수치를 적시해 어디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한 적은 없고 다만 관련 업계와 계속 협상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되었다. 해서는 안될 일을 억지로 하다 보니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만들기 어렵다. 수수료 인하가 공생발전 완장을 두른 공정위가 업계를 찍어눌러 나온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백화점 1층에 소위 명품업체들이 들어서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장사하는 자리(위치)와 자릿세 문제는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수치를 치열하게 따져 매일매일 비정하게 결정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요인을 반영해 시장에서 결정되는 수수료를 일률적으로 몇% 내리라니 일이 복잡하다. 수수료 인하를 적용할 중소기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어떤 곳에 몇 %를 내려줄지,어떤 경우에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장에서 결정될 일을 책상 위에서 정하다 보면 규제가 또 다른 규제를 낳아 결국 실타래처럼 복잡해지는 사례를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다. 지금 유통업체 수수료 문제가 바로 그렇다. 당국은 조폭도 깡패도 아니면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장사치들에게 공갈을 쳐대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는 국가 공무원으로서도 결코 할 일이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누가 공무원들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백화점 입점업체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각종 협찬과 판촉비용 부담 등 때로는 무리한 백화점 측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어렵고 경쟁업체와는 살벌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하루 종일 서서 발이 부르트도록 일하는 직원들은 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들이 얼마나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지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지금 공정위의 방식은 어떤 형태든 편법을 불러오고 나중에 보면 총비용은 결국 동일한 수준으로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엔 순진한 입점업체만 손해를 볼 것이다.

국회에 상정돼 있는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도 마찬가지다. 당초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고시에 담겼던 내용을 입법화한 것인데 규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무리한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백화점 등이 불공정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입증해야만 면책될 수 있도록 한 것은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이라는 지적이며 한국 법체계에도 맞지 않다. 이 법이 시행되면 지나친 규제가 거래 위축을 부르고 결국 백화점 등의 주문감소로 입점업체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위는 6일부터 시작되는 공정위 국정감사를 앞두고 유통업계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판매수수료 직권조사라는 칼을 빼들 것이라고 한다. 물론 동반성장 공생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상업의 기본 원리도 모르고 상업이익을 죄악으로 보는 이런 주자학적 행정으로는 결코 상업정신이 충만한 활기찬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딱한 일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