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침체로 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자 기업들이 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을 대안으로 찾고 있다. 그러나 상장 요건은 갖추지 못했어도 기술력이 뛰어나거나 성장성이 큰 기업들의 합법적 우회상장 통로를 만들어준다는 당초 스팩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합병 대상 기업 대부분이 성장성은 낮고 자산만 많은 장비 · 부품 업체인 탓이다.

◆하루 새 3곳의 스팩합병 발표

이달 들어서만 5개의 스팩이 합병을 발표했다. 지난 5일 하나그린스팩이 산업용 코팅장비 제조업체 피엔티와의 합병을 공시한 것을 비롯해 15일에는 이트레이드1호스팩이 카메라모듈 검사장비제조업체인 하이비젼시스템을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29일에는 신한스팩1호 IBK스팩1호 교보KTB스팩 등이 줄줄이 합병 결정 내용을 밝혔다.

일반 IPO 시장이 증시 하락으로 얼어붙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9월 한 달간 직접 상장에 성공한 기업은 2차전지 공정용 장비업체인 피앤이솔루션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스팩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IPO에 비해 증시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스팩과 합병하려는 기업은 자산가치,수익가치,상대가치 등으로 평가된다. 기관투자가들의 청약 경쟁에 따라 공모가가 결정되는 IPO와는 차이가 있다.

◆자산 많은 기업만 북적

최근 스팩 합병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합병 대상이 공장 장비 등 유형자산은 많고 성장성이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하청업체'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코리아에프티의 경우 작년 영업이익률이 1%대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난해 11월 우회상장 제도가 개선되면서 합병기업 가치산정 때 수익가치 산정 방식이 빡빡해졌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진단한다. 자본환원율을 상향 조정하면서 성장성이나 수익성보다 자산가치가 높은 기업들에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미 스팩을 통해 증시에 들어온 기업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스팩을 통해 가장 먼저 상장한 화신정공은 지난 8월17일 첫거래 이후 두 달도 안 돼 주가가 40% 가까이 하락했다. 자전거 업체 알톤스포츠도 신영스팩1호와 합병한 뒤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투자은행(IB) 부문 임원은 "주가는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데 스팩과 합병하려는 기업은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낮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